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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의 마음의 힘 13 - "차 한 잔의 여유"

붉디붉은 장미가 송이송이 흐트러지게 피어 온 세상을 밝히고 있는 참 곱디고운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기념하고 싶은 날도 많아 발걸음을 분주하게 하기도 한다. 자칫 들뜨기 쉬운 달이다.

오늘날 사회 구조가 혼돈과 빠른 변화에 놓여 있어 조금이라도 남보다 뒤지면 성공할 수 없을 듯 보인다. 또 그렇게 됐다간 삶이 송두리째 끝장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신경을 극도로 곤두세우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유의 부재'가 빚어낸 결말이 아닌가!

'바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 '망(忙)'을 보면 '마음(心)'과 '죽음(亡)' 이란 뜻이 합쳐져 있다. 글자 뜻대로 해석하면 '바쁨은 마음을 죽이는 일'이다. 정진홍 님은 '느림을 확보하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빠름 속에서는 새롭고 창조적인 생각이 잉태되기 어렵다. 느림이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느림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런 느림을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것이 마치 호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만큼 일상 속에서 느림은 거의 실종 상태요, 고갈 그 자체다"

바로 그 느림을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진짜 '쉼'이기 때문이다. 느림을 통해 확보한 진정한 쉼이란 또 다른 의미의 생산이다. 왜냐하면 쉼을 통해 얻어진 활력이 모든 생산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생활 속에 쉼의 여백과 느림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빠르게 하는 것이 마땅할 때는 빠르게 하고 느리게 해야 할 때는 느리게 하는 것, 음악가들은 '템포 기우스토'라 한다. 이 말은 곧 적당한 속도로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이렇게 바쁘게 일상생활을 할 때일수록 차 한 잔의 여유 혹은 느림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차를 대하고 있노라면 무엇보다 마음속에 여유가 자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차를 아껴온 무수한 차 애호가들은 차를 마시며 한가로움을 노래한다.

차를 마시며 내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본다면 무언가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면으로의 침잠을 위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리하면 떠 있던 화기(火氣)가 스스로 가라앉고 원래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해 있던 본성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차는 보통 구덕(九德)이라 하여 아홉 가지 효능을 지니고 있다. 머리를 맑게 하고, 귀와 눈을 밝게 하며 입맛을 당기게 한다. 또한 술이 깨고, 잠도 적게 잘 수 있다. 그뿐이랴. 갈증과 피로를 풀어 주며 추위를 막고 더위를 이기게 한다.

한 잔의 차는 이 우주의 축소판이라 한다. 압축된 자연의 질서와 생명이 녹아들어 있음을 누가 감히 부인할 것인가. 한 잔 차를 마심은 곧 자연의 질서와 소중한 생명을 취하는 행위인 것이며 바쁜 일상에서의 '쉼의 여유'를 찾는 일이다.

또한 차는 몸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차를 마실 때는 먼저 입에 한 모금을 머금고 지그시 이를 물고 입안에서 한 바퀴 굴린다. 차의 감미로움이 입안에 가득하게 전달되어 오고 삼키면 목젖에서 변화하는 차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이때 소리 없이 바람을 삼켜 보면 입안 가득히 향기로움이 밀려온다. 은은한 향기에 개운하고 감칠맛이 나는 담백함은 온갖 번뇌를 녹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조용한 가운데 그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저만치 홀로 피리" 라고 했다. 이 경지가 다선삼매(茶禪三昧)가 아니겠는가.

바쁜 일상에서 쉼의 여유를 차 한 잔과 더불어 찾아보자. 또한 우리 모두 마음속에 가득 찬 아집과 욕심을 해맑은 차로 밀어내 버리고 텅 빈 마음속의 빈자리를 일구어보자.

이 자리는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가난한 이웃의 자리요, 아픈 이웃과 함께 머무는 그분을 위한 자신만의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자리는 험난한 세파에 지쳐버린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꽃비가 내린다. 5월은 한 잔의 차로 마음속의 빈자리를 비옥하게 가꾸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자칫 들뜨기 쉬운 시간일수록 향긋한 차 한 잔 머금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주위를 돌아보는 침잠의 시간 느림의 시간을 가져봄도 좋을 듯 하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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