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최고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이순신공원. 관광객만이 아니라 주민들도 즐겨 찾는 멋진 곳이다. 한산해전의 격전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한산대첩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학익진 재현 때면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내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탁 트인 곳이라 해맞이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토록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이 이따금 섬보다 멀게 느껴진다. 대형 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차를 몰고 들어가려면 곡예 운전을 해야 한다. 동호항을 드나드는 차들과 철공단지 사이를 지나는 좁은 도로가 문제다. 철공단지 이전과 도로 개선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꿈꿔볼 만한 일이다.

이런 꿈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그다음이다. 철공단지의 선박 수리업체들을 일부분이라도 이전시키고 나면 건물들을 허물고 도로를 넓히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창의성의 시대가 아닌가? 상식을 뒤집는 게 창의성이다. 허물고 넓히는 것은 진부하다. 진부함은 즐거움을 주지도 못하고, 돈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불편한 도로만 보지 말고, 이순신공원과 동호항, 정량동, 망일봉 일대를 묶어서 봐야 한다. 이순신공원이 하나의 점으로서 명소라면, 이 일대를 묶으면 새로운 삶과 관광을 위한 지역(zone)이 형성된다. 바다가 있고, 역사가 있고, 항구가 있고, 삶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잇는 길이 있다.

여기에 예술 작가 촌이 들어선다면, 통영에서 제3의 관광지가 될 만 하다. 철공단지 건물들을 고쳐서 예술가들의 작가 촌으로 만들 수 있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의 셰필드시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제조업과 철강산업의 쇠퇴로 공동화된 지역을 문화와 예술로 되살려내었다.

건물을 굳이 손보지 않아도 된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외관은 손댈 필요도 없다.. 간판도 그대로 두고 실내만 고쳐서 작업실과 전시, 판매장으로 쓸 수 있도록 하면 된다. 2층은 숙소로 이용할 수 있다.

이만한 경험지를 두루 아우른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배에서 뿜어내는 땀내와 비린내를 구경하며 항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철공소 같은 화랑 겸 작업실을 구경한다. 그림마다 공예품마다 통영다움이 물씬 흐른다. 방파제로 올라서면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바다가 너울댄다. 통영의 명산인 미륵산을 넉넉하게 건너다보는 조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역사의 북소리를 좇아 이순신공원을 오르면 아이들과 나눌 얘기가 갑자기 많아진다. 문학소녀는 청마문학관을 둘러볼 것이요, 지구과학에 관심 많은 청소년은 기상대를 탐방, 학습할 수 있다. 눈 맛과 발품 맛이 일품인 망일봉 산책코스를 한 바퀴 휘돌아 다시 정량동으로 내려오면 항구 냄새 가득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행복한 길의 끝은 맛난 음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정석이다.

낡고 비릿한 것들 속에 내일이 숨어 반짝인다.

저자 주. 이 글은 시인 이중도 님과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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