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신은 유럽인들 사이에서 금전적 수익과 사회적 지위에 구속되지 않고 생을 느긋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다운시프족'(Downshift:느림보족)으로 불리는 이들의 소망은 삶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다.

유럽 다운시프트족의 확산은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삶의 양식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속도를 최우선시 해왔던 우리 삶에 경종을 울리는 빨간불로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운시프트족은 스트레스를 받는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느림과 여유의 미학(美學)을 일깨워줬다고 할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인가"라는 어느 시구처럼 현대인들은 앞만 보고 쉴 사이 없이 돌진해야만 하는 무한 경쟁 사회에 살고 있다. 모두들 잠시 쉬기라도 한다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일 때도 많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취이고 경쟁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맛과 여유를 충분히 느낄 수 없다면 먼저 목적지에 도달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의 맛과 여유가 빠진 인생은 아무리 경쟁에서 이기고 크나 큰 성취를 이룬다 할지라도 허탈감으로 이어지는 나날이 될 뿐이다. 인생은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몇 십 년을 두고 달려야 하는 머나 먼 여정의 길이다. 따라서 뛰는 것만큼 잠시 멈춰 서서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쉬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다음의 여정을 위해 힘을 저축하는 시간이요, 또 휴식 자체는 여정의 과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지 게으름이 아니다. 휴식은 열심히 일한 후에 오는 달콤한 쉼이지만, 게으름은 일을 해야 할 순간에 일을 끝내지 않고 자신을 속이는 방만함이다.

옛사람들이 건강 비결로 "속옷은 늦게 입고 늦게 벗으라고"한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날씨가 좀 춥다고 해서 곧바로 두터운 속옷을 껴입으면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데에 저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일찍 벗으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 교훈은 무엇이든지 남보다 앞서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급하고 조급한 요즘의 우리에게 삶의 이곳저곳에서 느긋한 여유를 가지고 대응하라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근대 과학의 화두는 스피드였다. '빠르게, 더 빠르게, 좀 더 빠르게'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생활의 모습이다. 온갖 통신 수단과 운송 수단 그리고 가전제품들은 '좀 더 빠르게'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속도에 휩쓸린 나머지 무엇보다도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음미하고 누리는 여유가 사라져 가고 있다. 편리해진 만큼 잃는 것도 많아진 셈이다.

게리 제임스 목사는 "살다 보면 전력을 기울여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러는 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거기 도달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왜 그러한지를 따져볼 안식의 순간 말입니다. 그러기에 느림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고 설교하고 있다.

'느림과 여유'는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행위이며 자유로움이다. 즉 적당한 속도로 자신의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제 너무 뛰지도 조급히 서두르지도 말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 어디도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자리다. 시작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디뎠듯이 우리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곳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침대에 누워라. 그리고 그 파아란 촉감을 느껴라. 침대는 차차 훈훈해지고 어둠이 밤의 침묵이 그대를 덮을 것이다. 두 눈을 감고 그대 자신을 느껴라.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아! 너무 벅차구나. 깊은 감사의 마음이 솟아난다. 이것이 휴식이다. 휴식이란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떤 기대나 요구보다도 충만함을 의미한다"
-오쇼 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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