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섬, 홍도는 괭이갈매기들의 천국이다. 6만여 마리의 아우라가 지키고 있는 갈매기들의 마지막 안식처. 우리의 마지막 지속가능성이기도 하다. 동서남해 각 한 곳씩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는 갈매기 보호 구역의 하나다(제64화 갈매기들의 천국 홍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특별허가 없이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먼바다, 낚시꾼들의 무분별한 출입으로 훼손 위험성이 무척 높다.

어느 방송에서 홍도 앞바다에서 월척을 낚아 올리는 연예인들을 보며 가슴 졸였던 기억이 있다. 방송의 위력 때문이다. 아메리카 버펄로의 뼈 무덤을 산처럼 쌓아 올리고서 의기양양한 백인 사냥꾼들의 미소가 겹쳐졌다. 갈매기들이 홍도에서 마저 쫓겨나면 남해안은 '침묵의 봄'을 맞으리니.

통영항에서 자주 만나는 갈매기들은 대부분 홍도에 둥지를 튼 괭이갈매기들이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을 좇으며 하늘을 수놓는 갈매기들의 떼 춤은 섬 탐방객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파란 바다, 하얀 구름, 구름보다 더 하얀 갈매기 그리고 빨간 봉지. 누런 새우깡을 물고 날아가는 노란 부리의 갈매기. 갈매기가 달려들 때의 심장 쫄깃함, 낚아채는 순간의 짜릿함. 환호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놀란 이들의 비명.

여객선을 뒤덮은 순백의 날갯짓은 새우깡을 내놓으라는 엄포에 가깝다. 쟁반에 받치지도 않고 봉지째 식사를 시중하는 나름 무례한 집사들이지만, 갈매기들이 낚아채면 환호작약한다. 성심이 깊은 집사들이다.

'끼루룩', 실패한 집사를 향한 질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집사들은 기죽지 않는다. 딴마음을 품지도 않는다. 가끔 제 입으로 가져가는 이도 있지만, 빨간 봉지가 탈탈 털릴 때까지 신명으로 동작을 반복한다.

사실 현명한 집사라면 갈매기의 건강을 생각해 메뉴를 바꿔야 한다.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식품첨가물들을 어찌 모른 체하겠는가. 갈매기에게 새우깡 먹이는 걸 금지하는 지자체도 많다. 이미 한강 유람선에선 새우깡 대신 마른 멸치를 제공하고 있다.

반려동물에게 초콜릿과 커피를 먹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이가 있다면 반려동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면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독이 되기에 십상이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먹이 활동하는 갈매기들의 야성이 미덥잖은 감미료 맛에 하나둘 꺾여간다.

새들은 인간과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전령이 아니다. 우리와 더불어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갈 우리 자신의 분신이다. 내가 아프면 갈매기도 아프고, 갈매기가 병들어 균형을 잃으면 우리 삶도 추락하게 된다.

갈매기는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생선을 먹고, 우리는 신선한 해산물을 먹고. 그렇게 다 함께 건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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