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통영에서 100세 생신을 맞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의 축하인사에 힘겹지만 작은 목소리로 답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놓고 한일 갈등이 고조된 터라 김 할머니의 생신 축하연은 그 어느 때 보다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할머니는 힘에 부쳐 말을 아꼈고, 평소 좋아하던 학생들의 재롱 잔치에도 살며시 웃는 표정을 짓는 게 전부였습니다.

올해 소원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기력이 없어 좀처럼 반응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눈에 슬픈 눈물이 깊은 주름을 타고 흘렀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 나한테 참말로 잘못했다. 그 한마디만 해 주면 됩니다.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필요없이 편히 눈을 감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겠소"

귀를 기울였던 그 때 할머니는 또 다시 작지만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소원이 또 있냐고 물어보면 다음 생에는 족두리 쓰고 시집가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소" 모든 이들의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김 할머니는 21세에 중국으로 끌려가 중국 대만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해방 뒤에도 갖은 고생을 살아왔지만, 평생을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1994년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공식 등록한 뒤 피해사실을 앞장서 알려왔습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효력을 문제삼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 원고 12명 중 1명입니다.

24년째 우리 정부, 일본 정부에 목소리를 내왔던 김 할머니는 지난 1일 진심어린 사과를 진정 받지 못하고 101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2018년 할머니가 떠난 지금, 위안부 피해자의 진상규명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노쇠해진 몸으로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 내던 그 용기를 이어받아 할머니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피해자 중심주의 철학'에서 우리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할머니! 고단한 삶 내려놓고 이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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