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로와 파트라슈는 안트베르펜 성당에서 서로 꼭 끌어안은 채 누워있습니다. 추운 겨울, 시간은 멈추었고, 둘은 온화한 미소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가 차가운 바닥에 누운 넬로와 파트라슈를 내려다봅니다. 그토록 보고프던 그림 아래에서 넬로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플랜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을 보며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는 안트베르펜 성당을 위해 또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1618년)이죠. '일본의 사도'로도 불렸던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선교 활동을 찬양하는 그림이죠. 이 그림 한가운데에 한복 입은 남자가 등장합니다. 저고리와 치마가 결합한 철릭입니다.

'꼬레아'로 추정되는 이 남자를 그리기 위해 루벤스는 이미 1617년 <조선 남자>를 그렸습니다. 망건을 쓰고 한복을 입은 그림 속 주인공은 분명 조선 사람입니다. 한복에 매료된 루벤스는 머리에 비해 몸집을 크게 그렸습니다. 한복의 선이 살아있는 듯 물결치며 흘러내립니다.

19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 이 그림이 나왔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습니다.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낙찰되었는데, 루벤스와 조선 사람의 만남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어떻게 루벤스를 만나 영감을 주었을까요?

1932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 박사는 <동서인도 여행기>를 발견하여 논문을 씁니다. 안토니오 꼬레아를 비롯한 조선 사람들의 수난사가 등장합니다.

"조선의 해안가 마을에서 엄청난 수의 부녀자와 아이들과 늙은 남녀들이 일본에서 노예가 돼 헐값으로 팔려간다"

이 여행기의 저자인 프란체스코 까를레티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1597년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합니다. 정유재란의 피바람이 몰아치던 그해, 까를레티는 조선인 노예 5명을 데리고 먼 여행을 떠납니다.

인도 고아 항에서 4명을 떠나보내고, 한 명의 조선인과 함께 그는 고향 피렌체로 갑니다. 동행인의 이름을 안토니오 꼬레아로 짓습니다. 

400여 년이 지금 이탈리아에는 꼬레아라는 이름의 집성촌이 있습니다.

일설에 꼬레아는 전북 남원 태생으로 1597년 정유재란 때 나가사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남원에서 납치되었다면 통영에서 물길로 부산을 거쳐 규슈로 옮겨갔을지 모릅니다. 육로보다는 해로가 훨씬 가까웠지요.

이역만리로 흘러간 고난의 물길이 바야흐로 한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통영 바다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요.

그림을 보다가 뜬금없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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