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참나와 실천행을 몸소 보여준 대행 선사 - 근본적인 물음 4

주인공(主人空)
주인공은 우리가 스스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근본마음으로서 일체 만물의 근본과 직결되어 있어 둘 아니게 돌아가고 있다.

주인공은 나의 참된 근본이다. 내 몸, 내 생각은 돋아났다가 곧 쓰러지는 가지나 잎과 같고, 주인공은 가지와 잎이 떨어지고 꺾이면 새로운 가지와 잎을 돋게 하는 뿌리와 같다. 내가 열매라면 주인공은 열매를 있게 한 꼭지와 같고, 내가 꼭지라면 주인공은 그 꼭지가 매달린 가지와 같으며, 내가 가지라면 주인공은 그 가지가 돋아 나온 줄기와 같다. 내가 줄기라면 주인공은 비유하건대 뿌리와 같으니 뿌리는 나무가 있게 된 근본이다.

이렇듯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가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나의 모든 생각, 나의 모든 활동, 나의 모든 공덕(功德)이 주인공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근본마음을 왜 주인공이라 부르는가? 나의 참 주인이니까 주인(主人)이요, 매 순간 쉴 사이 없이 변하고 돌아가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빌 공(空)자, 주인공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주인공을 근거로 생겨났다.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에 나는 무엇이냐?' 할 때에 '인간이 다만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바로 거기에 주인공이 있다.

우리는 나무의 싹이 올라왔을 때, 보이지 않아도 당연히 그 뿌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나무의 뿌리처럼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은 나의 근거이자 동시에 모든 것의 주인이므로 부처라 할 수도 있다. 모든 불보살과 일체 선지식과 모든 생명의 근본이 되는 주인공을 깨달아야 진정으로 부처를 알 수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그냥 아빠라 해도 좋고 엄마라 해도 좋다. 심주(心主)라 불러도 좋고 평상심이라 해도 좋다.

청수, 생명수라 해도 좋고 심봉(心奉)이라 해도 좋다.

주인공을 한 물건(一物)이라 해도 좋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 해도 좋다. 아미타불이라 해도 좋고, 본존불(本尊佛)이라 해도 좋다. 포괄적인 주처(主處)이므로 하느님이라 불러도 좋고 나의 님이라 해도 좋다.

주인공은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어서 도무지 고정됨이 없다. 주인공은 어버이이자 자녀이며, 가장 높은 이이자 가장 낮은 이이다.

주인공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자신을 이끄는 참자기인 것이다. 주인공은 '나의 나'요, '내 마음의 마음'이다.

주인공은 본디 태어나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다. 주인공은 육안으로 볼 수도 없고 생각으로 잡히지도 않지만, 영원하고 크나큰 '나'이다.

위대한 지혜의 빛나는 힘이 있고 청정(淸淨)하며 변함이 없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을 갖춘 '나'이다.

중생은 그 모습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차원이 다르고 나고 죽고 하지만, 주인공은 하나가 만 개로, 만 개가 하나로 도는 가운데 여여하니. 이를 일컬어 또한 부처, 자성불(自性佛)이라 한다.

그러므로 주인공을 통해 중생과 부처가 만나며, 일체가 둘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발견코자 하는 그 마음속에 있다.

우리가 요리할 때에 먹고 싶은 대로 재료를 준비해서 오븐에 넣으면 맛있는 음식이 되듯이, 필요한 대로, 원하는 대로 우리가 움직이는 그 살림살이 가운데 주인공의 면목은 드러나게 된다.
영원한 생명과 생각을 낼 수 있는 분별, 그리고 움직이는 육신, 이것이 삼위일체로 삼합이 되어 공전하게 하는 선장이자 길잡이가 바로 자기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거대한 용광로이다. 보이는 세계와 더불어 함께하는 일체 제불의 보이지 않는 절실한 대원력이 언제나 함께하는 용광로이다.

그러한 용광로가 내 속에 있다. 어떤 쇠든지 용광로에 들어가면 다 녹아내리듯 그 어떤 눈물도 자비로 화하고, 그 어떤 아픔도 감사의 염(念)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용광로가 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어떤 업도, 어떤 환난도 그 앞에서는 한 점 눈송이일 뿐이니 주인공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신묘한 비밀이요,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불성으로서의 불가사의한 힘이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의 위덕(偉德)이다.

주인공을 개별적인 것으로 알면 안 된다. 일체 법을 감싸고, 일체 법을 지탱하며, 일체 법을 굴리는 그 자리를 주인공이라 하는 것이니 어찌 '네 주인공, 내 주인공'하는 나눔이 있겠는가?

주인공의 본질이란 영원한 생명, 마음, 육신이 공체(共體)로서 공심(共心), 공생(共生), 공용(共用), 공식(共食) 하는 데 있다.

주인공은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은 빛깔도 없고 쥘 수도 없으나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주장자이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