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재 통영예총 회장

전국의 젊은이들이 어느 장소에서 다음의 대화를 주고받는 날은 언제쯤 올까?

“청마우체국,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

“청마우체국이 어디에 있는데?”

“에이 이 사람,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통영에 있지, 거기에 가면 편지 한통 꼭 써야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네.”

“그럼, 나도 한번 꼭 가봐야 하겠네.”

연인에게 전하는 애틋한 마음을 편지로 전달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상상속의 청마우체국을 그려본다.

지금은 전화로 인터넷으로 카톡으로 24시간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청마가 연애하던 시절엔 말 못할 사연을 편지로 전달하였다. 편지는 그 사람을 직접 대하는 것 보다 더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만들기도 하였다.

30∼40년 전,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즈음 대문간에 쌓이는 우편물은 공과금 청구서나 모임 안내장, 아니면 금융기관의 이자 납입 통지서, 보험료 납입 안내서, 물품구입 할부금 독촉장 등이 대부분이다.

그때는 주로 군대에 간 아들이 부모나 아내, 연인에게 보내온 것이거나, 객지에 돈 벌러 갔거나 공부하러간 자식이 보낸 편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외항선을 타거나 중동지역 또는 월남등지에 근로자로 파견되어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보내는 편지도 많았다.

한때는 펜팔이 유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우편을 통하여 글을 주고받았다. 얼굴도 모른 채 여러 차례 서로에게 글을 보내다 보니 정이 쌓여 연인이 되거나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편지는 대문간에 쌓일 틈도 없이 바로 받는 이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를 기다림은 그 자체가 희망이요 행복이기도 하였다. 어쩌다 예정보다 며칠이라도 늦거나 오랜 동안 답신이 없으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대문간을 쳐다보며 공연한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우체부가 대문 앞에서 “편지요” 하면 신발을 신지 않고 뛰어나갈 정도로 급히 나가 건네받았다. 어떤 사람은 글을 몰라 이웃이 대신 읽어주기도 하였다. 편지를 읽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 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였다.

요즈음 시대엔 진솔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없어 졌으니 세상이 더 삭막해 진 것 같기도 하다. 새로이 편지쓰기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 유치환이 지은 <행복>의 첫 구절이다. 이 시의 전문을 읽다보면 이성에 눈 뜨는 십대, 사랑을 하고픈 젊은이, 기성세대 누구도 이토록 진한 양귀비 사랑을 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누군가가 마음속에 남아있는 애송시 하나 말하여 보라하면 서슴없이 이 시를 떠올린다. 순정을 갈망하던 시절 환상의 그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낼 때 동봉하기 위하여 읽고 또 읽었기에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통영시 중앙동우체국 정문 앞에 이 시가 책 형상의 돌에 새겨져 있다. 청마시인이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이영도시인에게 수천통의 편지를 써서 부쳤다는 바로 그 우체국이다. 여기서 불과 이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 이영도 시인의 수예점이 있었다는데 청마는 매일 우체국 창문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 많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과히 편지의 시인이라 말해도 좋으리라.

우체국 후문 앞에는 청마의 흉상과 <향수>시비가 놓여있으며 사오십 미터 위쪽엔 그가 살았던 집과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 유치원이 있었다.

통영시는 중앙동우체국으로부터 세병관 입구 대로변까지를 청마거리로 지정하였다. 이 주변 일대는 청마의 손길과 발길이 매우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기에 청마거리 지정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청마와 그토록 사연이 깊은 이 우체국을 <청마우체국>이란 이름으로 전환될 날은 언제 오게 될 런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도산안창호우체국이 있으며 춘천에는 김유정역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도시의 큰 도로나 특정 건물은 그 지역출신 유명인의 이름을 붙인 것이 많이 있다.

청마 유치환은 근대 한국문단의 큰 인물 중의 하나이다. 통영의 중앙동우체국은 그가 지은 <행복>에 나와 있듯 그의 흔적이 가득 묻어 있는 곳이다.

한때 통영문인협회에서 이곳을 청마우체국으로 이름 바꾸고자 편지쓰기대회를 몇 년간 개최 하는 등 일련의 노력을 계속하였으나 한계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통영시는 이 일대를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리 모델링 하고 있다. 때를 같이하여 통영시장님은 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이름표를 바꿔다는 일도 동시에 추진하여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일이 이루어진다면 많은 젊은이 들이 설렘을 안고 이곳을 찾을 것이며 청마거리에 얽힌 스토리 또한 더욱 가슴을 파고 들 것이다.

청마의 체취와 숨결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우체국에 ‘청마’라는 이름표를 달면 통영은 분명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위상이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

청마우체국,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강기재 통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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