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광<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이제는 사진에서나 볼 수 있고, 시골 죽마고우들과 침 튀기는 추억 더듬기에서나 주고받을 수 있는 광경 가운데 하나가 먼 산비탈 밭에 거름 내기다. 자기 덩치보다 큰 거름 바지게를 지고 아버지의 뒤를 따르던 어린 아들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으나 지금은 정겨운 부자(父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추억된다.

그 시절 농번기 때는 거름 바지게 진 농부들의 바쁜 행렬이 논밭 길을 따라 이어졌고, 마주치는 이웃과 주고받는 인사말도 어느새 으레 반복적이었다. 부지런한 농부는 하루해가 짧다며 아쉬워하기 일쑤였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봄날 일요일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막내 누나가 데리러 왔다. 짐작 가는 바 있어 나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멀리 도망쳤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상인 마음 약한 막내 누나를 보면 언제나 도리 없다.

“얘야, 오늘은 백상봉(白上峰) 밭에 같이 거름 좀 내자.”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터라 투덜댈 겨를도 없이 무조건 빨리 거름 내기를 끝내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 하던 놀이를 이어가고픈 생각에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거름 무더기를 지게-작대기로 가늠하여 헤아렸다. 한 바지게 두 바지게. 아버지와 나, 나 많이 아버지 더 많이. 두세 번이면 되겠네! 아버지와 나는 서로 거름 무더기 반대편에서 거름을 바지게에 담는데, 아버지는 바지게의 7할만 담고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왜, 벌써 힘드신가?’ 나는 바지게 끝까지 수북이 담았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마저 바지게 채우시기를 기다리려 하는데 “져라! 가자!” 하신다. 쉬시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뜬금없는 그 말씀에 나는 적이 실망하며 속으로 ‘아버지는 꼴짝하셔! 초등학생인 나보다 거름을 적게 지시다니’ 하는데, 아버지의 한 말씀 “게으른 놈이 짐 많이 진다.” ‘얼씨구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신데요.’

보란 듯이 앞장서서 왕복 한 시간 남짓의 산비탈 밭으로 기세 당당한 발걸음을 거침없이 내디뎠다. 이렇게만 한다면 두세 시간이면 끝난다. 그러나 채 삼십 분도 못가 힘에 부쳐 주저앉아 쉬는 나를 아버지는 힐끗 쳐다보며 지나치신다. 결국, 내가 쉬고 또 쉬며 한 번 다녀올 동안 아버지는 쉬지 않고 두 번 다녀오시고, 내가 겨우 두 번 다녀와 지쳐 포기했어도 아버지는 온종일 거름을 내셨다. 나는 그때 ‘게으른 놈이 짐 많이 진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이후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그 가르침을 좌우명(座右銘) 삼아 일상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을 상기(想起)하고, 오유지족(吾唯知足: 나 스스로 오직 만족함을 안다)의 삶을 실천하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크게 이룬 바 없다 하여도 대과(大過) 없이 직장생활과 서울 생활을 동시에 마무리 짓고 고향을 떠나던 청춘(靑春)에 다짐했던 아름다운 귀향의 꿈을 초로(初老)에 이루었으니 장부(丈夫)의 삶 이만하면 어떠한가? 이는 모두 아버지의 가르침 덕일 뿐이다. 배움이 적으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제(齊)나라 환공(桓公 ? - BC643)의 유좌지기(宥坐之器), 계영배(戒盈杯, 잔을 채울 때 7할 이상은 모두 밑으로 흘러내림 즉 ‘넘침을 경계하는 잔’)의 ‘허즉의, 중즉정, 만즉복(虛則欹 中則正 滿則覆) 즉 비면 기울고, 알맞으면 바로 서고, 가득 차면 엎질러진다.’를 배워 아셨을까? 오로지 몸소 체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였기에 더욱 귀하고 존경스럽다.

치열했던 삶의 결승선[finish line]을 이미 지난 지금에도 앞만 보며 달릴 필요가 있겠는가? 낮이면 고개 숙여 땅의 숨소리를 듣고, 밤이면 고개 들어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한가로운 삶이면 안 될까?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 어떤 유산(遺産)보다 소중한 아버지의 가르침 ‘7할 거름 바지게와 계영배(戒盈杯)’의 지혜를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초로(初老)의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더하여 ‘7할 빈, 3할 거름 바지게’의 삶을 그려본다.

 

부모

 

어머니

체기滯氣

수저 들 때 오르고

수저 놓을 때 내리고

 

아버지

나락

쉬는 날엔

어제 베다 남은 나락도

“덜 익었더라.”

 

맹지반孟之反 열이면 이 마음 될까?

 

박진광<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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