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남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남긴다. 

이야기가 없는 인생은 적막하다. 돈이 많고, 권력이 크고, 명예가 드높아도 그에 걸맞은, 조개 속껍질 같은 자기만의 고운 이야기가 없으면 누가 돌아보겠는가?

하루하루 우리는 이야기를 밥처럼 꼭꼭 씹어 먹으며 산다. 만나고 스친 사람의 이야기와 바다 건너온 바람의 이야기, 햇살 받은 나뭇잎의 이야기, 밥상 위에 올려진 생선의 이야기를 먹는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하루는 밥을 먹고 똥을 싸는 일이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매일 우리는 이야기를 먹고 이야기를 싸질러댄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랬고, 정약전 선생의 <표해록>이 그랬고, 장철수 대장이 남긴 일기장이 그렇다. (제38화. 신안 사람 문순득과 통영 사람 장철수 참조)

통영은 문화예술의 보고라고들 한다. 인간문화재도 많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이끈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쟁쟁하다. 거기다 이순신 장군과 통제영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야기 보석 상자를 남겨주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과연 육지에만 이야기가 있을까? 유명한 이들에게만 이야기가 있을까? 섬과 섬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없을까? 없을 리 없는데, <돌아가는 배>를 쓴 김성우 같은 분을 제외하면 섬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준 이는 많지 않다. 

그러니 섬에는 이야기가 없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먹고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 무슨 이야기가 있겠어?' '고기 잡으며 고생한 이야기밖에 더 있겠어?' 

100여 년 만의 폭염이 치성했던 이번 여름, 통영의 섬마을에서 풍악을 울리며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들이 있다. 극단 달다방프로젝트가 14개 섬, 스무 개 마을을 돌며 연극 <섬마을 엄마>로 8월 한 달을 꽉 채웠다. 섬마을 엄마, 아버지들은 이들이 펼친 난장에 박장대소하고 눈물을 훔쳤다.

극단은 5, 6월 세 번에 걸쳐 마을을 답사하며 섬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검게 그은 살갗 바로 아래 스며있던 이야기를 연극놀이를 통해 드러내고 나누었다. 어무이, 아버지들이 눈을 감고 그린 자화상엔 섬마을의 '마음'이 고스란히 베였다. 그렇게 채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되었고, 다시 섬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되돌려주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났다. 사람이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사람이 되었다. 정자나무 아래에서, 마을회관과 공터에서 펼쳐진 난장에 꽃이 피었다. 웃음과 눈물로 버무려진 이야기꽃이 피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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