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1번지, 한산신문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지역문화 NIE
충무고 지역문화예술NIE 제6강 통영예술의향기 박우권 회장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김춘수 꽃 시비 등 통영문화 현장 답사

■ 2018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 한산신문 응모사업

한산신문-통영예술의향기-충무고 공동기획 '예향1번지, 한산신문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지역문화예술NIE 

“300여 년 동안 조선팔도 최고 장인들의 12공방과 더불어 궁중 문화가 접목돼 새로운 창의 문화가 이 지역에 꽃피우게 됐다. 통영의 문화예술 DNA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바다의 도시 푸른 통영에 사는 사람들의 혈관 속에는 대대로 예술가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이를 두고 문화 예술계의 거장인 작가 박경리는 통영 사람에게는 ‘통영 예술 DNA’가 흐른다고 이야기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그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한산신문과 시민문화서포터즈 통영예술의 향기가 지난 11년간 지역민과 함께 펼친 다양한 문화예술NIE를 학교 교육현장에 접목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7일 ‘예향 1번지, 한산신문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지역문화예술NIE’ 프로젝트의 여섯 번째 강의로 통영예술의향기 박우권 회장(윤이상 통영국제음악제, 통영한산대첩 등 디자인 총 감독)이 나섰다.

이번 강의는 ‘한산신문을 통해 발굴한 지역문화예술 현장을 가다’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 통영문화 현장 답사를 진행, 통영에 흐르고 있는 예술 DNA를 찾아 떠나는 시간이었다. 이날 강의에는 한산신문 전 직원 일동이 참석, 현장 사내 연수가 동시에 진행됐다.

충무고등학교 2학년 학생 45명과 지도교사, 한산신문 전 직원 등 총 55은 첫 번째 답사 장소인 김용식·김용익 기념관에 모였다.

통영예술의향기 박우권 회장이 김용익 작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용익 작가 ‘꽃신’이야기

박우권 회장은 김용익 작가의 첫 작품이자 단편집인 '꽃신'이 탄생되기까지의 꽃신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작가를 소개했다.

한국 외교 개척자인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과 '꽃신'의 작가 김용익 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2013년 4월 17일 고향 통영에 건립, 일반인에 공개됐다.

이 기념관은 한산신문과 통영시인서포터즈 통영예술의 향기가 힘을 모은 시민문화운동이 모태, 기념관이 들어선 의미 깊은 장소이다.

1913년 11월 11일 통영에서 태어난 김용식(1913~1995) 외교관은 1949년 홍콩 주재 영사로 발탁된 이래 33년 동안 외교관과 행정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장 세계적인,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불리고 있는 김용익(1920~1995)은 1920년 통영에서 출생, 중앙중학을 거쳐 일본 동경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가 남플로리다 대학교와 켄터키대학교, 아이오아대학교 대학원 소설 창작부에서 공부했다.

김용익 작가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한글도 일본어도 아닌 영어로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6년 동안 소설을 쓰는데 열중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기차편을 통해 뉴욕의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매번 퇴짜 맞기 일쑤였다. 김용익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그동안 완성된 단편집까지 덧붙여 꾸준히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1956년 단편소설 ‘꽃신(The Wedding Shoes)’이 미국 유명잡지 '하퍼스 바자'에 소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책이 팔리기 시작한다. ‘꽃신’은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김용익 작가는 순식간에 일약스타가 됐다.

한국인의 서정을 영어로 노래했던 그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영어로 집필된 것이었으나 국내에서는 한글로 번역 출판됐다.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전시실에는 고인들의 일대기 등을 담은 책자와 유품, 사진 등 50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박우권 회장의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은 기념관을 둘러보며 김용식 외교관과 김용익 작가 형제의 정신과 작품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춘수 꽃 시비 앞에서 수업하고 있는 모습.

꽃 한 송이의 위대한 힘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두 번째 답사 장소는 남망산 입구에 건립된 꽃 시비였다.

충무고 학생들과 첫 강의가 시작됐던 지난 5월 25일 한산신문 김영화 편집국장(통영예술의향기 감사)은 한산신문과 통영예술의향기가 펼친 지난 11년간의 각종 문화운동 중 그 시발점이 된 꽃 시비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지역문화사를 학생들과 교감하며 강의를 진행했었다.

꽃 시비 문화운동에 대한 내용을 수업을 통해 들었던 학생들이 이번에는 직접 꽃 시비가 있는 장소를 찾아 시를 읽고 흥미로운 수업에 다시 한 번 빠져들었다.

2007년 4주기 추모제 때 통영시민들의 기금운동으로 건립된 꽃 시비는 대한민국의 시민문화운동으로 전국의 지자체가 스터디 할 만큼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당시 김춘수 선생의 문학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발족한 시비건립추진위원회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꽃과 의미)’이 활동한 지 2개월 만에 이뤄진 쾌거였다.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꽃과 의미)’은 시민 대표로 이지연 씨가 회장을 맡았고, 한산신문이 이를 전폭 지원했다. 그러다가 2007년 9월 8일 ‘꽃과 의미’는 한산신문을 통해 ‘우리는 김춘수의 꽃 시비를 세우고 싶습니다’라는 취지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꽃송이 모금에 들어갔다.

꽃 한 송이당 1만원 이상 자율 기탁을 원칙으로 시작한 작은 운동은 어느새 하나의 시민 문화 운동으로 번져나가며 만 2달 만에 4백여 명의 시민이 꽃과 의미로 거듭났다.

꽃 시비 뒤에는 그 당시 모금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박우권 회장은 꽃 시비 모금운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금 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한 중학생이 찾아왔다. 꽃 한 송이 기부금은 1만원이었는데 그 학생은 난처한 표정으로 2천원을 내면서 자신의 이름도 시비에 넣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 ‘꽃과 의미’의 회원이 자신이 나머지 8천원을 보태주며 그 학생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제안은 시비에 이름을 넣어주는 대신 1년에 한 번씩 시비를 찾아와 비석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과 옆 사람 이름을 닦는 것이었다.

박우권 회장은 “꽃 시비가 이렇게 깨끗한 것을 보니 왠지 그 학생이 와서 닦아주고 있는 것 같다. 왜 그 학생은 그토록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했을까?”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아마도 역사에 자신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작은 꽃 한 송이로 문화운동이 시작됐듯이 작게 새겨진 이름 하나가 문화적 역사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문화운동이 있을 때 여러분들도 참여해서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통영 문화예술 DNA의 발원, 우리는 통영인이다

남해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 문화 예술계의 거장인 작가 박경리는 통영 사람에게는 ‘통영 예술 DNA’가 흐른다고 할 정도로 통영은 문화예술인의 도시다.

이에 박우권 회장은 통영 문화예술 DNA의 발원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 통영 탄생의 순간으로 안내했다.

강의가 진행 될 장소였던 조선시대 주력 전함 판옥선은 태풍 솔릭 피해로 인해 잠시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학생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정박 중인 거북선을 견학했다.

거북선 앞에서 세 번째 현장 답사 강의가 진행됐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북진을 막기 위해 서해 진출의 길목인 한산도로 진을 옮긴다. 이 시점이 통영(삼도수군통제영의 준말) 탄생의 분기점이다.

이후 1604년 음력 9월 9일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지금 통영인 두룡포로 통제영을 옮겨 건설했다. 음력으로 9월 9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현재 통영시민의 날인 10월 1일인 셈이다.

세병관 경내 수항루 뒤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 기사비는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치적이 새겨져 있다. 이는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다. 비문에는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300여 년 동안 조선 팔도 최고 장인들의 12공방과 더불어 궁중 문화가 접목돼 나전칠기, 두석장, 갓, 통영소반,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 등 새로운 창의문화가 통영에서 꽃 피게 됐다. 통영의 문화예술 DNA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3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통영에는 배를 만드는 사람, 생활도구를 만드는 사람 등이 모였고, 자연스레 경공업이 발달하게 됐다.

경공업의 발달로 나전칠기, 부채 등 장신구와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이 생산됐다. 이 시기는 예술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박우권 회장은 “이러한 시대상으로 통영에는 많은 예술 장인들이 생겨나게 되고, 학습하게 됐다. 그러한 DNA로 인해 통영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생겨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자신들이 가진 역사 지식을 뽐냈다. 박우권 회장은 강의 중간에 퀴즈를 내며 정답을 외치는 학생에게는 통영 출신 문화예술인들의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푸른 바다 통영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배출됐다. 여러분들이 통영의 곳곳을 다녀보면서 우리 지역이 가진 소중한 문화 예술적 가치를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살펴본 강의로 여러분들만의 또 다른 문화적 DNA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를 마친 학생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스카이라인루지를 체험했다. 스카이라인루지 통영은 개장 이래 탑승 횟수 270만회를 기록하며 성인은 물론 가족 방문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어드벤쳐 명소다.

이번 수업은 충무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동안 쌓였던 학업에 대한 부담감에서 잠시 벗어나 교실이 아닌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체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역문화 NIE 현장 답사에 참석한 충무고 김예진 학생은 “이제까지 진행된 수업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통영 지역의 문화 예술에 대해 배워왔다. 현장 답사를 통해 다시 강의를 들으니 더욱더 확실하게 이해됐다. 특히 김춘수 시인의 꽃 시비가 통영시민들의 주체로 문화운동으로 건립됐다는 것에 감명 받았다. 그러한 시민문화운동이 또다시 시작된다면 통영 시민의 일환으로 꼭 참여해 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획= 김영화 기자, 글·사진 = 강송은·박초여름 기자, 동영상 촬영= 조우진 인턴기자, 편집= 배선희 기자, 진행= 박우권 통영예술의 향기 회장, 충무고 김덕현 교사, 한산신문 총무국 김봉애 관리부장, 장소협찬 및 후원 =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통영관광개발공사 통제영 거북선, 스카이라인루지 주식회사, 한산신문 독자자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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