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 (통영문학상운영위원회-부위원장 강수성)명칭은 이치에 맞지 아니함을, 이미 통영시측에 정중하게 청원한 바 있으나, 원만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가, 프로필에 ‘통영문학상’으로 표기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벌써 밝힌 바 있다.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하소연에도, 답은 그저 성의 없이 잘해 보겠다는 회신이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보다 ‘김상옥 문학상’이 낫고, 그보다 ‘김상옥백자예술상’이 반듯하다. 이는 김상옥 선생 생전의 예술창작영역이 시(시, 시조, 동시), 산문, 서, 화, 전각, 도자기, 도예, 수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문학상’ 관련 사항은 다음으로 미루고, 본인은 김상옥 선생의 예술 혼을 기리는 《초정기념사업회》의 추진위원장으로서, 2018년 《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 운영과 수상자 선정에 관련해서, 솔직한 심정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올해 《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대상자가 발표되고 인터넷상의 자료를 통해 수상자의 프로필을 얻게 되었다.

수상자 박지현 시조시인의 프로필 중에, 청마문학상 신인상 수상 약력을 접하게 된다. 청마 유치환 시인은 시조를 쓰지 않았다. 시조에 관련해서 공헌한 바도 없는데 느닷없이 시조문학상 부문이 출현되었고, 수상자가 선정되어 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상당한 잡음이 일었던 것이다. 다음해부터 시조 신인상 부문은 삭제되었다.

당시의 수상작 「저물 무렵의 시(詩)」를 접한다. 표현의 미숙으로 인하여 완성시키고자 하는 주제를 반영하는데, 부족함을 나타낸 기형시조로 보인다. 말하자면 의욕이 앞서서 도리어 화를 자초한 경우라는 말이다. 필자는 1986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조가 당선된 이후 등단 32년차로서, 더도 덜도 아닌 솔직한 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청마문학 시조신인상은 잘못 뽑았다. 민망스러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신인상의 작품으로까지는 숙성이 덜된 작품으로 보겠다. 덧붙여 말하자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지에 근접하는데 꽤 시간을 허비했다는 뜻이다. 수상작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수차례 훑어보니, 그런 뜻인가 하는 내용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수상자가 올해 《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을 받게 된다니, 우연치고는 곡절이 애매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일단, 《통영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자의 시조 관련 프로필을 다시 보니, 시조부문 등단 17년 차가 된다. 인근의 마산에서 행해지는 제2회 노산시조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경력 프로필에는 그간의 지명도도 드러나고 등단 37년, 27년 두 분의 시조시인임을 감안할 수 있었다. 누구나 공감시킬 수 있는 사안에 닿아 있었다. 물론 이분들보다도 현저히 떨어진 경력에도, 여타문학상을 수상한 경우를 접하는 것이 과거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시민의 혈세로 이루어지고 있는 통영시의 제반 문학상이, 공모 없이 운영위원회의 스스로 규정에 의해 추천해서 실시되는 제도 하에, 박지현 시조시인이 수상을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공모와 추천을 배제하고 밀실 짜깁기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여태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슨 엉뚱한 데가 있는 것은 아닐까.

통영시는 등단 30년 전 후의 명망 있는 시조시인을 당선자로 내미는 일부 제도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니고 주변인의 공감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올해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문학상이라고 판단되어지기보다는 ‘좋은 작품상’ 정도로 품격을 낮춘 경우에 해당 되겠다. 유명문학인의 시업을 기리는 예우에 한참 어긋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산을 잘못 쓰고 있지 않나 하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정 김상옥 선생님을 오랜 간 모셨던 제자로서, 현재까지 진행해 오고 있는 행사가 선생의 시업을 기리는 것이라기보다, 품격을 도리어 격하시키는 경우로밖에 느껴지질 않는다. 말하자면 질 낮은 문학상 제조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김상옥 시조문학상 운영에 관련하여, 통영시측에 오래전에 내용증명으로 보낸 청원은, 아직까지 답변조차 받지 못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수상자의 등단 나잇살로 보면, 한 10년은 더 정진하고 반듯한 시조문학상 1∼2개 정도 수상한 후, 공모를 통해 평가받길 희망한다. 이와 관련해서 심사위원은 물론 수상 대상자까지 재고에 재고를 거듭해 주시길 요청 드린다.

같은 값이면 품격이 높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제도를 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때, 소문만 무성했던 허울 좋은 잔치로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시민의 세금으로 장난질의 요령은 절대 흔들어선 안 된다. 문학이나 예술상의 명칭을 틀 속에 가두지 말길 바란다. 오히려 각각의 개성을 살려 널리 홍보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더 환영받을 것이다.

예전 생각은 바꿔져야 한다. 이게 미래의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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