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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 출연 풍해문화재단 이철성 이사장의 특별한 思母曲

“객지생활 50년을 하는 동안, 당연한 일이지만 고향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향 산천(山川)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품속처럼 언제나 포근하고 다정스럽다. 고향을 찾아가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고 그곳을 떠날 때면 마치 다시 못 올 이별이라도 고하듯 마음이 쓰리다. 나의 남다른 고향 생각은 예사로운 사랑과 그리움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겠다는 감사와 보은(報恩)의 뜻을 간직해온 것이다"

87세 나이에도 어머니가 생각난다. 200억원, 어머니와 나의 고향 통영에 대한 나만의 사랑법이다. 고향 통영의 풍요로운 바다가 되고 싶다.

"한산도 제승당을 바라보는 한려수도 입구 자그마한 항구도시 통영시 항남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아버지를 잃고 5남매 생계를 위해 쌀가게를 하는 어머니 품에서 꿈을 키웠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탓에 만화에 흠뻑 빠졌던 문학소년 이철성은 통영중학교 은사였던 김춘수 시인의 권유로 부산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칼.마르크스를 만나 사회과학, 특히 경제·사회분야로 확대, 3학년에 경제학과로 전과했다.경제학 공부에 매진하면서 자본주의를 알게 돼 내친김에 고등고시(高等考試)에 도전, 재학 중이던 1955년, 제6회 고등고시 행정과 재정경제부문 필기시험에 단독으로 합격했다.

이를 계기로 관계(官界)에 투신한 그는 재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무부 감사과장, 국세청 직세·조사국장, 부산·서울국세청장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다.

유신체제하였던 1974년 권력에 의해 관직을 빼앗겼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심기일전해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 주경야독하면서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경제학자로,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국무총리·기획원·재무부·국세청 정책자문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제2의 인생'을 마음껏 구가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정년을 맞고 회고록과 후배들을 위한 자서전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2006년 사재를 출연, 재단법인 통영 풍해문화재단을 설립, 고향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사업 지원과 장학사업에 여생을 보내고 있다.

87세 이 나이에도 어머님이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그 마음으로 어렵지만 씩씩하게 자라나는 지역 인재를 위해 더욱 열심히 후원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1969년 국유지였던 남망산을 통영시 재산으로 전환하고, 모교인 통영초교와 통영중·고교 매년 장학금과 도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 이것이 어머니에 대한 나의 작은 보답이다.

또 한산신문과 함께 손을 잡고 펼친 지역아동센터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랑의 릴레이 사업은 물론 꽃시비 문화운동, 초정 김상옥 기념사업회, 옻칠미술관, 극단 벅수골 등의 문화 지원은 물론 통영독립운동사 등 통영관련 학술 총서도 연속적으로 발간한 것도 어머니와 내가 행복했던 고향 통영의 후세를 위한 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진행했다.

또다른 고향 사랑의 특별한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 끝에 풍해문화재단에 더 많은 기금을 출연하기로 결심하고 바로 이번 여름 실행에 옮겼다. 총 200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내고나니 더욱 마음이 편하다. 이제 사랑하는 어머니와 나의 고향 통영의 다양한 문화사업과 교육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란다. 豊海(풍해)-풍요롭고 넉넉한 통영의 바다가 되고 싶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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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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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 2018-09-27 13:50:41

    어머님 품같은 고향의 애향심 그리고 통영문화와 예술에 재단을 설립
    후배양성에 힘 기우리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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