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주. 사진은 나도밤나무의 한 종류인 마로니에 열매이다.

밤은 가을을 대표하는 간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밤나무는 감나무와 더불어 고향과 시골의 향수를 자극하는 쌍두마차다.

그런데 밤나무와 닮은 듯 다른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가 있어 가끔 족보 논쟁이 일기도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친족으로 분류하고, 나도밤나무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너도밤나무는 떫긴 하지만 먹을 수 있는 반면에, 나도밤나무에는 사포닌과 글루코사이드 등 독성 물질이 들어 있어 설사나 구토 등 위장장애를 겪을 수 있어 먹으면 안 된다. 밤이랑 비슷하게 생겨 호기심에 먹었다가는 혼이 난다.

너도밤나무는 울릉도가 원산지인 한국 특산종으로 이곳에서만 자생하고, 나도밤나무는 남해안에 두루 서식하니, 통영에선 너도밤나무를 만날 일은 없겠다. 나도밤나무는 추위와 공해에 약하지만, 바닷바람에는 잘 자라는 성질을 갖고 있어 통영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재밌는 건 '나도'와 '너도'를 붙인 연유다. 원래의 종자와 유사하면 '너도'를 붙이고, 상관없는 종자의 경우엔 '나도'를 붙인다. 참 지혜로운 명명법이다. '나도'를 부르짖으며, 자기를 내세우는 이는 짝퉁이기 마련이고, 주변에서 '너도 맞다'라고 인정하는 이가 진짜다.

너도밤나무에 얽힌 울릉도 전설이다.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 산신령이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라 하였다. 그런데 한 그루가 말라 죽어 100그루를 채우지 못해 벌을 받게 되었다. 그때 자기도 밤나무라고 손든 이가 있어, "너도밤나무?"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여 사람들은 위기를 넘겼고, 너도밤나무는 사람들로부터 귀함을 받는 나무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밤나무는 다 죽고 너도밤나무만 번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밤 율자 율곡(栗谷)을 호로 썼던 이이 선생의 탄생에도 유사한 전설이 있다. 태중에 아기를 가진 신사임당 꿈에 현무가 나타나 아기가 호환(虎患)을 겪을 운명이라고 하였다. 비책을 물으니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면 된다고 하여, 부지런히 심었지만 결국 1그루가 말라 죽어 위험에 처했다. 이때 나도밤나무가 자신도 밤나무임을 주장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밤나무와 비슷한 너도밤나무든, 전혀 다른 나도밤나무든 다 소중한 나무들이다. 비록 독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도밤나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큰 별을 잃어버릴 뻔했다. 자연에 진짜와 가짜가 따로 있겠는가? 목적과 용도를 따질 때 편의상 쓰는 말일뿐, 자연에는 진짜도 가짜도 없다.

너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

저자 주. 사진은 나도밤나무의 한 종류인 마로니에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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