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대첩 당시 조선 수군의 군량미 창고(倉庫)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알려진 한산도 창동(倉洞). 하지만 수군 진영이 있었던 두억리가 아닌, 섬을 반 바퀴나 돌아가야 있는 마을에 군량미 창고를 두었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이런 상식적인 의문은 대게 타당하다. 그렇다. 군량미와 군수물자 창고는 두억리 의항마을 '진터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창동은? 실제로 이 마을엔 조선 수군의 창고가 있었다. 다만 임란 때가 아닌, 임란 이후 제8대 이기빈 통제사 때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배를 타고 한산만으로 진입하다 보면, 왼편에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가 내려다보고 있다. 고동산(高銅山)이다. 임란 때 꼭대기에서 소라고둥을 불어서 신호를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와전된 이름으로, 여러 형태의 한자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우리말 고동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삿갓 모양의 고둥처럼 생겼다.

망산 서남쪽 아래에 있는 하포(荷浦)마을은 임란 때 수군이 군수물자를 하역(荷役)한 곳이라는 유래설이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 지명은 며을포(멸포)였고, 주민들 입말로는 '멸개' 또는 '멜개'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멸치잡이가 성행했던 마을 이름이란 걸 금세 알 수 있다. 멸치를 뜻하는 '멜'이 어깨에 매다는 뜻의 한자 '하(荷)'로 표현된 것이다.

필자가 <섬마을 엄마> 연극을 만났던 야소마을(제175화와 제176화 참조)에는 무기를 제작한 대장간(풀무간)이 있었다고 전한다. 야소(冶所)마을의 야(冶)자가 풀무를 뜻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야싯골', '야싯개'라 부르는데다, 여우가 자주 출현했다는 노인들의 말을 보면 여우를 뜻하는 '야시', '여시'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인다.

이렇듯 한산도 마을 지명은 대부분 한산대첩과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래설을 갖고 있다. 몇 해 전 국비 지원을 받아서 만든 역사 안내판에 이런 유래가 소상히 적혀 있다.

하지만 이들 유래가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허구이다 보니, 안내판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진실인 양 굳어저서 왜곡된 역사가 대물림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런데 지금은 스토리텔링의 시대 아닌가? 거짓말도 돈이 되는 시대다. 그렇다고 장군의 후예들이 거짓말을 버젓이 할 수는 없잖은가? 한산도 지명을 소개할 때 '이순신 장군 스토리'가 아닌 '이순신 장군 스토리 텔링'을 들려주는 것이다.

'옛날에 그랬다'가 아니라 '"옛날에 그랬다"는 이야기를 창작한 이야기'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사적 사실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비벼서 탄생시킨 창작물이기에. 뉘신지는 모르지만, 지명의 유래를 조작한 이는, 시대를 앞서간 기획자요, 스토리 텔러요, 창의적 사고의 소유자요, 후손들이 먹고살 방편을 마련해준 고마운 분이다.

그럴듯한 지명 유래를 들으면 신기하고, 역사 속 진실을 들으면 반전의 재미가 있고, 스토리를 만든 이들을 생각하면 놀랍다. 이걸 모두 묶으면 한산도가 보인다.

덧붙여, 두억리를 중심으로 한산도 수군 진영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하다. 역사는 온전히 복원해야 한다.

저자 주. 한산도 지명의 유래는 통영문화원에서 발간한 <통영지명총람>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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