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옥교수의 추천으로 창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2003.3.1.∼2006.12.)에서 시창작강의를 맡아 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열성적으로 현대시조론, 현대시강독, 현대시작법, 현대문학사, 문학개론, 해양문학에 관해 공부도 하고, 가르치던 때이었다. 그 시절 나는 문학청춘이었던 정소란 으로부터 그가 쓴 상당한 분량의 시 원고를 건네받은 적이 있다. 그의 글을 훑어보고 무슨 말을 한 기억은 있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는 그때 나의 생각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어느 날 그의 집에 불이나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그동안 써 두었던 원고는 말할 것 없이 소산(疏散)되었고, 애들만은 무사하다는 말에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얼마 후, 그는 《조선문학》을 통해서 시부문에 등단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짬짬이 그가 발표하는 시편들을 접하기도 했다. 아래의 시 「숲에서 필적을 만나다」(2018년 《통영문학제》 통영문인협회시화전, 1018. 10. 6.∼13.)는 근자에 발표한 것으로, 습작기 때나 「추억」(경남신문, 2016.6.)이나 「풀꽃」(대구매일, 2017.11.)의 경우와는 다른, 상당히 시적 배경과 문장의 당위성에 접근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에서 필적을 만나다」
                     정소란

건조한 손등이 하얗다/초록 핏물이 선명하고/핏기 없는 손등에 연분홍 살갗이 비친다
미세한 핏줄도 없이 눈동자는 맑다/유약해진 발톱에 단정한 숲길이 걸린 오늘이라면/푸른 그늘 무성한 중턱을 너머서 산길로 가야지

얼비치는 햇살이 바래진 얼굴을 훔쳐본들/끝내 새겨 넣지 않는 불온한 이기를 알고 있다/너는 자연의 밖 나는 가장 안전한 자연의 속/이중률의 규칙 앞에서 당당히 걷는 길

느린 걸음 맞은 흙길이 보풀 없이 숨을 죽이면/은은한 필적이 따라오는 소리/맑고 낮은 시 한 편 알맞게 적고 싶다

아늑한 숲길은 많은 것, 즉 몸과 마음 그리고 그 이상을 힘 솟구치게도 한다.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가 되기도 한다.

'자연의 밖'은 녹음의 밖을 의미한다. 이곳에서는 '건조'하고 '핏기 없는' '손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미세한 핏줄도 없이 눈동자'만 맑고 청순한 상태이다. 구체적으로는 '하얗'고 '연분홍 살갗'이 눈 안에 들어온다. 검푸르거나 거무죽죽하지 않은 것은, 그래도 화자의 마음엔 아직도 푸른 희망이 존재하는 곳임을 느끼어 알 수 있다.

이에 반대되는 '자연의 속'은 '초록 핏물이 선명'한 곳이다. '푸른 그늘 무성한 중턱'은, 인간이 복잡한 사회 굴레를 벗어나 찌든 마음을 너그러이 뉘이거나 쉬일 수 있는 곳이다. '얼비치는 햇살이 바래진 얼굴을 훔쳐'서라도 다독여줄 수 있는 곳으로, '끝내 새겨 넣지 않는 불온한 이기를' 인식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약해진 발톱에 단정한 숲길', 즉 '느린 걸음 맞은 흙길이 보풀 없'는 '산길'을 걸어가면서, '자연의 밖'과 '속'의 '이중률의 규칙'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산의 중턱까지 오르는 산길을 통해서 '맑고 낮은 시 한 편 알맞게 적고 싶다'는 속뜻을 남긴다. 그에게서 이렇게 신선한 시(詩), 즉 '필적을 만나'고 있는 것을 얻어 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위의 시에서는 빗대어서 설명한 비유 등의 기능을 시적 완성도구로 사용, 시의 전체적 이미지를 전개시키는 능력까지 도달했음에, 앞으로도 더 알찬 시가 양산되리라는 믿음에 닿을 수 있겠다.

김보한<시인·문학평론가·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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