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원리"

 

윤회와 환생

사람이 나고 죽는게 윤회이지만, 태어나서 늙는 것도 윤회이고 사계절이 돌아 드는 것도 윤회이다.

물방울이 돌고 돌면서 천차만별로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것도 윤회이며, 별들의 생성과 소멸도 윤회이다. 일체 만물만생이 다 그렇게 하며 산다. 살다가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 윤회의 고리가 없다면 아마 '자연의 이치', '진리' 이러한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으로 올라오려면 천 년의 공을 닦아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 한 번 되기가 이렇듯 어렵다고 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그 전에 살던 습을 못 놓고, 항상 자기 자신, 자기 것만 아니까 고(苦)가 끊일 새가 없는 것이다.

또 그렇게 살다가 진화해서 승진하기는커녕 끝 간 데 없이 세세생생을 쳇바퀴 돌듯 빙빙 돌거나 아니면 좌천하여 짐승의 허물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한번 짐승의 허물을 쓰게 되면 먹고 먹히는 처절한 삶을 살게 되므로, 한생각 해볼 겨를조차 없어 수억겁을 가도 그 허물을 벗기가 어려워진다.

깨달은 사람에겐 나툼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윤회이다. 일체 만물만생이 잠시도 머무름이 없이 나투고 돌아감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은 인과에 따른 윤회일 뿐이나 깨우치면 나툼이다.

윤회가 없다면 진화도 없다. 윤회는 성불케 하는 힘이다. 따라서 윤회는 업보에 의한 시달림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이요, 수행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다.

지금 살아가는 순간에도 죽고 나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니, 죽음이란 것도 그런 윤회의 한 마디,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죽었기에 오늘을 살게 되듯,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언제나 동반 관계요, 함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죽음 속에 이미 삶이 있고 삶 속에 이미 죽음이 있으니 찰나로 변해 돌아가는 이것, 윤회야말로 나를 갈고 다듬어 성불케 하는 힘인 것이다. 윤회가 없다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도 없는 게 된다.

죽음이란 변치 않는 나의 근본마음, 주인공이 옷을 한 번 갈아입는 것이다. 우리가 입던 옷이 낡아지면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주인공도 쓰던 육신을 바꾸는 것뿐이다.

헌 옷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고통, 슬픔이겠지만, 새 옷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은 기쁜 탄생이다.

몸을 벗어도 의식은 남는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의 육신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살아있는 상대방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제 욕심만으로 상대를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되면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거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알 수 없는 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을 때 진실로 마음 닦는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갈 때도 걸리지 않고 홀가분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얽히고 설킨 게 다 붙어 돌아가면, 오도 가도 못하고 중음신(中陰神)으로 떠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서 근본자리에 일체를 놓는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죽게 되면 그 의식 그대로 눈 멀고 귀 멀어 캄캄한 가운데 전혀 분간을 할 수 없기에, 돼지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까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을 한 사람은 마음이 밝디밝아서 온 방안을 고루 비추니, 자기뿐만 아니라 그 법을 모르는 같은 식구들도 밝게 살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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