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메인박스 칼럼
최광수의 통영이야기 189 - 오늘의 이순신 2, 사랑하다
   

이순신 장군의 실제 인물 사진이 있다 치자. 사진을 14만 조각으로 나누면, 한 조각에 담긴 장군의 모습은 결코 위대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야 위대한 이순신의 모습이 완성된다. 작은 조각 하나라도 빠지면 완성된 모습은 아니다.

크고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이순신. 그 한 조각이 내 몫이라면, 장군을 따라 배우기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시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악마는 사소한 데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큰 부담 갖지 않고 가볍게 시작해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 따라 배우기'는 누구라도,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몫의 모자이크를 고르려면, 이순신 장군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아야 한다. '성웅'과 같은 수식어에 가려진 이순신이 아닌, 본래의 이순신 말이다. 요즘 말로 "뽀샵" 하지 않은 원본 사진이 필요하다.

사실 이 일은 쉽지 않다. 전문가도 아닌데 어떻게 원본 사진을 구하겠는가? 하지만 예상외로 쉬울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수많은 책을 다 읽어야 본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중일기'를 찬찬히 읽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해 보다 춥다는 이번 겨울,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구수한 누룽지를 꼭꼭 씹듯이 천천히. '성웅'이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인간' 이순신의 마음을 느껴보고, 그의 고뇌를 함께해 보자.

모자이크 이순신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자가 헤아려 본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몇 가지로 정리해본다. 이것은 학술적으로 분석한 게 아니라, '난중일기'를 읽으며 저자의 마음으로 들어온 모습일 뿐이니, 독자들도 저마다 그려보면 좋겠다.

모자이크의 첫 번째 조각은, 사랑과 눈물이다.

이순신에겐 울어야 할 이유가 많았다. 쇠약해져 가는 어머님의 안부가 걱정되어 울었고, 자식의 죽음 앞에 목 놓아 통곡하였고, 전투와 혹한으로 고통받는 부하들이 안타까워 울었고, 전란에 휩싸여 부초처럼 떠도는 백성들이 불쌍하여 울었다.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한을 이길 수 없었다."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약 7년간 계속된 '난중일기'의 첫날 기록이다. 어머니의 안부 걱정은 난중일기의 단골 메뉴이다.

효자치고 좋은 남편 드물다는데, 아내 사랑은 어땠을까? 아내 상주 방씨 이야기가 보이지 않아 역시나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읽어보았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 시대라고는 하나 '사랑하는 남자' 이순신이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내가 까막눈이었다.

"앉았다 누웠다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촛불을 켜 놓고 뒤척거렸다. 이른 아침에 세수하고 조용히 앉아서 아내의 병세를 점쳤더니 … 이것도 오늘 안으로 좋은 소식을 들을 징조이다(1594년 1월 1일)"

집에 불이 나면서 병으로 고통받는 아내를 걱정하느라 잠 못 드는 남편 이순신의 모습이 적나라하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