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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191 - 오늘의 이순신 4, 단순함으로 길을 가다

"맑음, 오늘 옥문을 나왔다." 죽음의 문턱에서 풀려나, 백의종군을 시작하던 1597년 5월 16일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정치인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촛불 앞의 바람 같은 이 산하를 적의 아가리 앞에 내던지 후안무치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나는 이순신의 침묵을 알지 못한다. 어떤 철학적 명제로, 어떤 전술사적 서술로, 어떤 심리학적 언사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침묵은 단순했다. 그의 검명처럼 말이다.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파랗게 떨고)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조선 사대부의 이념도 없고, 정치적 입장도 없고, 오로지 남도의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려는 '뜻'만 있다.

이순신은 무섭도록 단순하다. 그의 칼은 적을 베어 쓰러트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을 베기도 했다. 부하를 죽인 날 그의 글은 단순하다. "아무개가 거듭 군령을 어기기로 베었다.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 그의 칼끝에는 자비도 없었고, 무자비도 없었다. 칼은 오로지 베기만 할 뿐, 칼의 주인은 사실을 사실대로 적을 뿐.

삼도수군통제영은 칠천량 해전에서 괴멸되었고, 그는 다시 통제사가 되었다. 2만 명에 이르던 병사들은 죽고, 흩어지고, 수백 척에 달하던 전선은 단 13척만 남았다. 설상가상 최고 지휘관은 병영을 이탈했다. "맑음. 오늘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오로지 눈앞의 전투만 있었다.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명량으로 달려드는 330여 척의 적선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돌파한다. 고뇌는 없다. 수적 열세는 아침이슬에 불과했다. 해가 뜨면 사라질. 그의 단순함에는 대안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살길을 찾는 부하들에게 그는 죽음의 길을 열어주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그의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였다. 그것은 그의 뜻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한 바구니에서 건져내는 그 선택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무관심도 아니요, 자포자기도 아니요, 그냥 단순함이었다.

단순함은 자신의 목숨에 대해서도 한결같았다. 1587년 녹둔도의 둔전관 재임 시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죽을 위기에 처했다. 군관 선거이가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는 뜻에서 술 한 잔이라도 마시라고 하자,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인데 술은 마셔 무엇하오(死生有命, 飮酒何也)” 하였다.

삭탈관직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그는 단순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죽게 되면 죽는 것이다(死生有命, 死當死矣).” 노량해전 전날, 진린은 이순신에게 제갈공명처럼 죽음을 예방할 기도를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제갈공명의 얘기로 되돌려 준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死生有命, 제갈공명, 『삼국지』)."

이순신의 단순함은 무식함과 짝을 이루지 않았다. 간절함과 잇닿아 있었다. 지극하니 단순하고, 단순하니 간절하였다. 그의 단순함은 여전히 두렵다.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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