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대한독립만세"
100년 전 피끓는 함성, 다함께 외쳐보자

4차에 걸친 3천7백여 장꾼, 지식인, 학생, 기생 합심 '통영만세운동'
3월 1일 10시30분 동충 한산대첩광장 3.1절 기념행사 및 만세 재현 


"철석같은 우리의 신념, 벽력같은 우리의 함성, 나라 생각 외에 일절 구구한 욕심은 도적질이다. 우리에게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다오.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통영의 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오는 3월 1일 원문공원 3.1기념탑과 동충 한산대첩광장에서 열린다.

특히 올해는 '이제 우리는' 통영시민 선언문 낭독과 통영항일독립운동 사료전, 사적지 답사, 그리고 학술세미나도 마련돼 있다. 

또 최덕지 등 여성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통영호주선교사의 집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통영호주선교사기념사업회에서도 3.1절 100주년 기념 전통 연날리기 축제와 떡국나눔 행사 등을 펼친다.

통영의 만세운동은 지식인은 물론 장꾼과 학생, 여성과 기생 등이 합심해 4차에 걸친 3천700여 명이 참여, 뜨거운 만세운동으로 한국사에 기록되고 있다.

목숨 건 통영 만세운동의 출발은 1919년 3월 8일 경성 배재고에 재학 중인 진평헌이 귀향, 3월 13일 장날을 기해 진평원, 권남선, 양재원 등 19명의 청년들이 거사를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인의 밀고로 10일 새벽 일본 경찰에 발각, 주모자 모두 체포, 투옥된다.

그러나 당시 하와이로 망명, 미주국민회 간사로 있던 고채주(당시 59세)가 밀입국, 20일 후인 4월 2일 현 통영시 중앙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3천여 장꾼들과 합세,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사건으로 일경에 붙들린 주모자 3명이 대구부산형무소에서 1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이들 가운데 이학이(당시 22세), 허장완(당시 21세) 등 세 열사가 옥중에서도 독립정신을 굽히지 않아, 심한 고문에 의해 옥사하거나 가석방돼 나와 숨졌다.

이학이 열사는 6개월의 형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 해 9월 부산형무소 부설병원에서 사망, 부산의 최천택 등 청년들에 의해 객선으로 통영으로 운구돼 8일장을 치렀는데, 장례기간 동안 곳곳에서 군중들이 만세를 불러 죽음 이후에도 민족혼을 일깨웠다.

또 6개월형을 받은 허장완은 부산감옥에서 마산형무소로 이감, 모진 고문으로 그해 10월 9일 옥사했다.

허 열사의 시신은 마산청년단들이 배둔까지 운구하고, 배둔청년들은 고성까지, 고성청년들은 다시 통영까지 운구하는 등 시신을 옮겨 왔으며 운구를 하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일경의 삼엄한 경비 아래에서도 민족혼을 과시했다.

또 고채주씨는 1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중병으로 가석방, 통영면 도남리(현 도남동)에 돌아와 1920년 6월 21일 60세의 나이로 세월을 떠났다.

그는 40세의 나이로 하와이로 망명, 마카월린 농장에서 품팔이를 하면서 1906년 교포들을 모아 자강회를 조직했고, 1908년에는 한인합성협회와 전 미주한인공립협회를 통합, 국민회를 창설하는 등 해외독립운동의 큰 기둥이었으며, 고향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4월 2일 시위에는 예기조합의 기생 33명도 금비녀와 팔찌를 팔아 소복차림으로 시위대열에 동참했다는 감동적인 기록도 있다.

당시 통영은 지금과 다름없이 남해안의 어업 전진기지였다.

1899년부터 일본 어업민의 이주로 집단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통영 어시장의 해산물 가공, 생산, 유통을 장악, 지역 어민과 상인을 수탈해 왔기에 반일감정이 크게 고조돼 있었다.

통영의 시위는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총 4회 3천700여 명의 지식인, 청년 학생들이 주축이 돼 차츰 각계각층 시민들이 참여했다.

대부분 장날을 이용, 통영 읍민과 인근 농어민들까지 동참, 시위 규모가 확대돼 당시 통영시민들의 독립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 원문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3.1운동 기념비는 통영인으로서 3.1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고 희생을 당한 애국지사들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1972년 9월 충무 시민의 이름으로 남망산 광장에 세웠다가 1991년 원문공원으로 이설,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3월 1일 원문공원 3.1운동 기념탑 앞에서 3.1동지회 유족과 공무원 위주로 통영만세운동 기념행사를 간소하게 치러오다 2012년 진의장 시장 시절 격을 높여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시민 동참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통영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는 3.1동지회와 통영시가 준비하고 있다. 

통영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 국권 회복을 위해 순국하신 선열들의 위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이번 행사는 3월 1일 오전 10시 정각 원문공원 3.1운동 기념비와 3열사비에서 헌화와 묵념으로 시작한다.

이어 동충 한산대첩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10시 30분 기념행사를 펼친다.

고석윤 3.1동지회 회장을 비롯 독립유공자 유족, 관내 보훈단체장 및 기관단체장 등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산대첩광장에서는 남해안별신굿보존회(보존회장 정영만)의 진혼제를 시작으로 꿈틀꿈틀 통영청소년 뮤지컬단(단장 원필숙)의 '세가지 소원'의 갈라쇼가 펼쳐진다. 세가지 소원은 위안부로 끌려가 힘든 삶을 살았던 '미아'가 저승사자에게 세가지 소원을 비는 이야기이다.

본격적인 기념식에서는 강석주 통영시장의 기념사, 고석윤 3.1동지회장 추모사, 시민 대표의 '이제 우리는' 통영시민 선언문이 낭독된다.

이어 통영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삼일절 노래제창, 강혜원 통영시의회 의장 만세삼창, 시가행진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고석윤 3.1동지회 회장은 "다시 봄은 왔지만 우리의 가슴 속 차가운 바람은 쌩쌩 불고 있다. 조국을 위해 웃으며 대문을 나섰던 우리 학이, 장완 열사들, 흰 상복을 입은 우리의 언니들…모두가 통영의 주역들이다. 이제 우리가 그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며 시민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한편 통영문화원 역시 통영시로부터 2천만원의 보조비를 받아 오는 3월 14일 오후 2시 통영항일독립운동 학술세미나를 펼치며, 2월 25∼3월 15일 통영문화원 전시실에서 통영항일독립운동 사료전을 펼친다.

또 통영항일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를 3월 1일 오전 11시 15분과 3월 26일 오전 10시 2회에 걸쳐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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