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었다. 1박 2일 류의 명성이 남긴 번다함이. 부담스러웠다. 그 큰 섬을 우째 걸어 다니노. 헐렁했다. 자동차로 둘러보니 별로 보이는 게 없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었다. 사시사철 섬들이 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섬으로 가는 길은 늘 열려있었지만, 면사무소가 있는 큰 섬들은 늘 뒷순위였다.

어느 날 욕지 앞바다와 고래 이야기를 담은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옴팡 마음에 들어왔다. 인간과 자연, 그 사이의 삶과 역사, 문화를 하나로 껴안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거기다 고래의 유혹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웠다.

어느 봄날, 훌쩍 욕지도로 건너왔다. 제자들과 함께. 오랜 인연, 첫 만남. 해가 바뀐 약속의 실천. 만남은 이야기다. 이야기로 인해 만남이 있고, 만남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보인다.'고 했던가. '함께 하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로 바꾸어 말해야겠다.

섬에 들어 힐링하려면 홀로 섬길 걷는 게 좋다. 이럴 땐 이야기도 필요 없다. 오로지 바다와 섬과 하늘을 바라보는 가슴만 있으면 된다. 길벗과 함께하더라도 한둘을 넘기면 안 된다.

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벗과 함께해야 한다. 섬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기왕이면 들어서 아는 이야기보다 스스로 경험하고 체득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렇게 만난 욕지는 섬 전체가 이야기 꾸러미였다. 바다에 떠 있는 양식장 부표처럼, 갯바위에 총총 박혀있는 고둥처럼.

욕지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많다고 했다. 1955년 설립된, 경상남도 사립유치원 제1호였던 근화유치원. 지금은 건립 기념비로만 기억할 수 있지만, 욕지 사람들의 교육열을 알 수 있다. 공도 정책으로 비어있던 섬에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온 것이 1888년인데, 그다음해인 1889년에 서당을 건립하였던 역사에 닿아있다.

할매 바리스타로 유명한 좌부랑개 마을은 근대어촌발상지다. 1893년 이전부터 일본 어선들이 드나들었으며, 1901년 일본 어업인이 정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본격적으로 근대어촌이 형성되었다. 통영이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라 불리게 된 역사는 욕지에서 시작되었다.

동항리 예배당은 통영 최초의 교회로 1902년에 건립되었다. 언제 사라졌는지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있다 3년 전 복원되었다. 주일이면 다섯 명이 예배를 본다고 한다. 목조 예배당이 너무 앙증맞고 예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100년 전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

길을 따라 이야기에 심취하는 동안, 3월의 욕지는 더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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