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생전 인터뷰 모습.

사법부를 향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 초대정부 시절, 국회의원을 암살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서민호 의원을 육군 대위가 암살하려다 사살된 사건이었다. 1심에서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서민호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이 “그런 판결이 어딨냐”며 볼멘소리를 하자, 김병로 대법원장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일갈하였다.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

대한민국 사법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과 함께 효암 이일규 대법원장이 꼽힌다. 현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모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일규 대법원장을 언급했다.

통영 출신의 효암 선생은 강직한 법조인으로서 사법부의 사표로 기억되고 있다. 사표가 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으리라. 성실하고 모범적인 자세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특히 서슬이 시퍼런 독재정권 시절에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세운 그 기개는 누구도 감히 꺾기 어려운 두려운 것이었다.

1974년 대한민국 최악의 사법살인 사건이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계자 8명이 1, 2심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신헌법 체제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인권침해사건이다.

당시 13명의 대법관 중 이일규 대법관만 유일하게 반대 소수 의견을 내었다. “재판 도중 공판조서가 변경되는 등 위법적 요인이 많다. 다시 재판해야 한다.” 훗날 선생은 이날의 재판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8명은 결국 2007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절대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선생의 서슬퍼런 강직함이 드러난 사건은 그 외에도 많았다. 대법관 재직 12년 8개월 동안 시국·간첩 사건에서 10여 차례 소신 판결을 내렸다. '통영의 대꼬챙이'라 불렸던 이유다.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선생은, "선비란 위로는 왕공(王公)과 벗하고 아래로는 농공(農工) 대열에 끼여야 하며 임금을 깨우치고 피폐한 교육진흥을 위하여야하며 지위로는 등급이 없고 덕으로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효암 선생은 분명 선비였다. 통영에서 선비를 꼽으라면 효암 선생과 함께 윤이상, 박경리 선생을 들 수 있겠다.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날조된 '동백림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윤이상 선생. 국외로 추방되어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선생은 한 번도 조국과 고향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은 유장한 작품의 깊이와 노년의 삶 자체로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겠다.

오래 전부터 통영엔 양반이 없었다는 말이 전해왔다. 하지만 선비는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선비 세 분을 가진 것만으로도 통영 정신은 세상을 맑히는 샘물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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