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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08 - 이팝나무
   

바야흐로 꽃의 계절 오월이다. 연이어 피고 지는 꽃들을 보노라면 생명의 신비함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무엇이 저들이 때가 오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게 하는가. 차가운 겨울바람 휘몰아칠 땐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회색빛 가지 끝에서 작은 점 하나 피어오르더니 찬란한 생명이 무더기로 합창을 한다. 이 벅찬 함성 앞에 서면 우리는 쉬 생명 예찬론자가 된다.

생명보다 아름다운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박경리 선생도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덧붙여 당부하였다. 고통받는 생명의 아픔을 보듬는 진짜 사랑을 하자고.

벚꽃도 모두 지고 산천이 푸르게 푸르게 변해가는 요즈음 하얀 쌀밥을 뒤집어쓴 듯한 꽃을 도로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다. 꽃들이 얼마나 탐스럽게 많이 달렸는지, 쏟아질 듯 수북하게 담긴 고봉밥을 연상하게 된다. 어릴 적 손님이 되어 방문한 집에서 만났던 고봉밥은 내게 힘든 추억이다. 배부름의 고통을 생생히 겪어야만 했던.

'이밥'과 '조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나무들은 원래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봄이면 유독 배가 고팠던 시절, 온 산을 하얗게 뒤덮은 꽃들은 그야말로 '그림 속'의 '밥'이 되어 배고픈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했으리라.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엄연히 다르다. 먼발치에서 보면 하얗게 덮인 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조팝나무는 키가 1~2m 정도이고, 둥근 꽃잎을 가진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핀다. 이팝나무는 최고 20m까지 자라는 교목으로 길쭉한 흰 꽃이 수북하게 뒤덮는다. 이팝나무는 5~6월에 피고, 조팝나무는 더 이른 4~5월에 핀다.

조팝나무는 꽃 모양이 좁쌀을 튀겨 놓은 듯하다고 해서 조밥나무라고 부르다가 조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원산지가 한국이다. 흰 쌀밥을 닮아서 이밥나무로 불렸다는 설과 24절기 중 입하 무렵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고 해서 이팝나무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입하 즈음 남부 지방에서는 못자리를 만드는데, 이때가 이팝나무 개화기이다.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걸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속설에는, 조선시대에 왕과 양반들만 먹어 '이씨들이 먹는 밥'이었다거나, 태조 이성계가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해서 일반 백성들도 쌀밥을 먹게 되어 '이성계가 준 밥'이란 뜻으로 '이밥'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흰 쌀밥은 특히 통영 먼 바다 섬에서 자란 여인들이 구경하기 힘든 존재였다. 시집갈 때까지 쌀밥 한 말을 못 먹었다고 할 정도이니. 배고픔의 고통과 배부름의 고통은 쌀밥에 얽힌 상반된 기억이지만 뿌리는 같다. 배고픔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경제 성장기의 손님 밥그릇이 '철 지난' 고봉밥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고봉밥 구경도 못 해봤겠지만, 배고픔의 DNA는 아직도 우리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베여 있다. 특히 상다리가 휘어지는 통영식 요리 상차림은 분명 '철 지난' 것임이 틀림없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는 생명의 아픔을 보듬기는커녕, 생명을 학대하는 행위이다.

철 따라 바다가 길러낸 '생물'들로 소박하게 차린 밥상이 이제 우리의 '격'에 맞겠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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