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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09 - 그날 밤의 두려움

우리는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쉽사리 한다. 하지만 동물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들에 의하면,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깻잎 한 장에 불과하다. 인간도 동물로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한 발짝 더 내디뎠을 뿐, 고향 친구들과 여전히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공포심이다. 방울새가 꼬리를 흔들며 목욕을 하거나 먹이를 쪼고 있을 때, 그림자가 지나가면 쏜살같이 달아난다. 그러다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에 부딪혀 즉사하기도 한다.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에도 두려움의 대가가 너무 크다.

인간의 두려움도 동물의 두려움도 근원은 모두 죽음에 닿아 있다. 두려움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위험의 낌새를 빨리 알아차릴수록 안전하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두려움은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다.

옥포해전. 왜군과의 첫 전투는 무사히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병사들에겐 승리조차 가혹했다. 그만큼 전쟁은 두렵고도 고통스러웠다. 모두 곤히 잠든 시각, 진중에서 소란이 일었다. 악몽을 꾼 병사가 발작하자 진중의 모든 병사가 동조되어 날뛰었다. 마치 귀신들린 듯 곡을 하고, 울부짖고, 뛰어다니는 자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투의 승리라는 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조정에서나 기뻐할 일인지 모른다. 전장에서의 매 순간은, 죽음의 공포와 살육의 두려움 사이 외줄 타기일 뿐이다. 두려움이 사무치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엄한 군율과 명령체계도 소용없다.

그때 놀라 날뛰고 있는 병사들을 멈춰 세운 건 요령 소리였다. 느닷없는 소리에 혼란은 잦아들고, 놀란 사슴 눈을 한 병사들이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제서야 장수의 목소리가 병사들을 제정신으로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의 지혜와 통솔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옥포대첩의 승리는 그렇게 공포심 속에서 지나갔다.

우리 사회도 지금 갖가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경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비를 줄이니 경기가 더 위축된다. 객관적 지표는 분명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데. 왜곡된 정보가 만연한 탓이다.

식량난으로 천만 명 이상의 북한 동포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세계가 나서서 인도적 지원을 하려는데 국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70년간의 분쟁이 빚은 두려움과 트라우마 때문일까.

인도적 지원은, 정치, 종교, 사상, 이념, 인종, 민족, 성별 등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시급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지원의 조건은 단 두 가지. 정말 위급한 상황인가? 지원이 실제 도움이 되는가? 혹시 다른 데 빼돌려질 가능성은 없는가? 이것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원칙이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국제기구 WFP에서 공식 보고한 내용이다. 분배과정의 투명한 감시는 국제기구들에서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 군사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현금이 아닌 당장 먹을 옥수수와 쌀을 지원하는 것이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며 최대한 압박해온 미국 정부도 인도적 식량 지원에 동조하고 나섰다. 이제 트라우마는 내려놓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울 때다. 미사일을 쏘는 건 군부이고, 배가 고픈 건 아이들과 일반 주민들이다.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이다.

사단법인 한국제이티에스(www.jts.or.kr)에서 5, 6월 춘궁기를 넘길 수 있도록 '배고픈 북한 아이들에게 옥수수 1만 톤 보내기' 특별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존재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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