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4월 28일 광도면 황리 산업단지내에서 열린 부지조성공사 기공식<사진 한산신문 DB>.

안정지구를 마침내 국가공단으로 개발하겠다는 정부고시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스무 해가 넘도록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역대 선량들이 선거 때마다 이 문제를 들먹이며 해결하고 말겠다는 공약(公約)을 했지만, 번번이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공단지구 지정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은 말이 아니었다. 지붕개량을 하지 못한 채, 비가 오면 방 안에서 비를 맞아야 하는 형편이니 주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민선시장이 되어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되었다. 부임 초, 때마침 정부에서 LNG 저장 기지를 남해안에 건설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후보지로서 광양만과 통영 안정만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안정 주민들은 조선단지만을 바라고 있던 터라, 이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대신 광양만은 포항제철이 나서서 그 기지의 적극적인 유치작전을 벌이며, 설계 용역 준비까지 서두르는 단계였다.

마침 그 해 10월 12일이, 김영삼 대통령 부친 김 장로의 생일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통령을 조용히 단독으로 만나 간절히 부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대통령께서 마산에 내려오면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로, 대통령 부친을 미리 찾아가서 생일날 나도 참석하겠다는 승인을 받았던 것이다.
 
생일이 가까워질 무렵 마산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은 바쁜 일정 관계로 내려오지 못하고 부득이 자신이 청와대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생일 축하 예배 장면이었다. 그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한 분 초청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목사를 수소문해서 손상률 목사임을 알게 되었다. 즉시 상경하여 손 목사를 만나 예배 후에 준비해간 건의서를 대통령께 전달하면서, 절실한 내용을 소상히 강조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다행스럽게, 전국 시장 군수 대회가 열리게 되어 청와대 초청 오찬이 있었다.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국 자치단체장 232명이 영빈관에서 각 시도별로 도열하여 악수를 할 때라, 긴 말은 할 수 없고, 밤새 연구했던 간단한 억지 인사말을 이판사판으로 하게 되었다.
  
"각하! 통영의 오랜 숙원이던 안정 공단을 해결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래요? 잘 이루어 보세요!"
 
가벼운 미소까지 지어 보이면서 당연한 인사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런데 내 말을 건성으로 듣고 예사로운 인사였는지,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얼마 전에 있었던 예배 후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기도 했다.

한때 통영 해안에 심한 적조현상이 나타나 대통령께서 직접 현장 확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루 종일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대화중에 해저터널 누수현상과, 통영 해안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해상연주회의 꿈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예산 지원까지 약속해서 이루어 졌던 친근감을 믿고, 약간 억지스런  인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날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왔을 때, 시청으로부터 꿈같은 낭보(朗報)를 받았다. 드디어 LNG 생산기지가 안정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뒤에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날 오전에 대통령께서 이미 재가(裁可)를 한 뒤에 오찬에 참석하셨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숙원을 풀어주는 재가가 있은 직후에, 그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대통령께 고맙다는 인사를 직접 한 것은 시간적으로 적절했고, 억지가 아닌 지극히 당연한 인사였던 것이다.
 
그 후, 공단 지구 주민들과 얽힌 여러 가지 문제의 매듭을 풀고 1999년 4월 28일 드디어 역사적인 통영 LNG 생산기지 부지조성공사 기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
 
23년간 막혔던 숙원의 봇물이 터지면서, 그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보람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규모의 지방공사가 시작되었다. 지역 발전의 당당한 거보(巨步)였다.
 
오랜 숙원을 해결해 주신 김영삼 대통령께 특별히 감사를 드리며, 중간 역할을 맡아준 손상률 목사께도 우리 시민들이 모두 감사할 일이다.
 
공단이 완공되고 가동되면서 예상했던 매년 130억 원의 지방세 수입도 차질이 없었으며, 연쇄적으로 이 지역 발전의 큰 활력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내가 퇴임 후, 2003년에야 주민들이 그렇게 바라던 성동조선소까지 들어오게 되어 안정공단은 한층 더 활기가 넘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0여 년 후에 성동조선소는 시대적인 여건으로 무너지게 되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대책이 마련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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