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큰 새의 하나인 알바트로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무척 궁금해하는 새다. 알바트로스는 왜 그리 큰 날개를 가졌을까? 우리나라에도 날아온 적이 있을까? 땅을 박차고 오르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멀리 비행할까? 이름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암수가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할까?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왜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야만 할까? 공룡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세상을 꿈꾸던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질문한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여러 시간 동안 우아하게 활공 비행 하는 알바트로스가 왜 플라스틱 죽음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공룡의 멸종처럼 알바트로스의 죽음도 아이들의 손을 떠나지 않는다.

알바트로스를 만나러 봄비 촉촉이 내리는 날 서울 성곡미술관을 찾았다. 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미드웨이'에서 8년여 동안 알바트로스와 함께 했던 크리스 조던 작가의 전시였다. 이미 알바트로스가 되어버린 작가의 시선. 다큐멘터리 영화와 사진들로 담아낸 생명의 신비와 현실은 관람객의 마음을 깊이 적셨다.

알바트로스는 짝을 짓기 위해 함께 춤추며 노래한다. 어긋나던 장단이 맞아떨어져 한마음이 되었을 때 암컷과 수컷은 새 생명을 잉태한다. 단 하나의 둥근 알이 사랑의 결실이다.

하얀 껍질에 금이 가고 새끼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하지만 줄탁동시는 없다. 부모는 다만 기다릴 뿐, 밖으로 나오는 건 오로지 새끼 자신의 몫이다. 그렇게 꼬박 사흘을 몸부림쳐 완전히 알을 벗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 순간 하늘을 울리는 부모의 함성은 누가 들어도 기쁨과 고마움의 소리다. 하지만 환호작약하는 그 순간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암컷과 수컷은 교대로 새끼를 보호한다.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간 어버이 새는 꼬박 1주일을 비행한다. 드디어 뱃속 가득 담아온 먹이를 새끼에게 먹이는 순간이다. 어미 입에서 새끼 입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먹이 가운데 빨강, 노랑, 파랑 플라스틱이 눈에 띈다. 모두 경악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영상을 바라보던 엄마들이 자신도 모른 채 아이들 손을 놓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새끼를 살리기 위해 애쓴 부모가 새끼를 죽이고 있다. 영상을 바라보는 우리는 아는데, 정작 알바트로스 어미도 새끼도 모른다. 어쩌면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우리들 외에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지 모른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 높이 나는 알바트로스에겐, 수면에서 반짝이는 게 생선인지, 플라스틱인지 구분할 재간이 없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저자 주.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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