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지역문화 공간의 새 이름>

①개인의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

②동네서점의 변화, 편견을 깨다

③책-사람-책방 함께 공존하다

④통영에서의 작은 책방, 현재와 미래

1986년 사회과학 전문 서점 ‘개척서림’으로 시작
지역민들과 일상공유, 지역 사랑방으로 자리매김

디지털매체의 환경으로 종이책과 독서인구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은 책을 소비하는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지역서점 운영에 대한 위축을 초래하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의 공세에 밀려 재정과 경영상 등의 이유로 지역에 있는 곳곳의 서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는 진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주문고는 서점이란 이름 아래 진주시민들과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진주문고만의 운영방식을 토대로 34년의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주문고는 1986년 사회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서점 ‘개척서림’으로 시작했다. 사회과학 서적의 시대가 지나고 ‘개척서림’은 1988년 ‘책마을’을 거쳐 1992년부터 ‘진주문고’로 상호를 변경한 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본점인 진주 평거점과 분점인 진주 엠비씨네점을 운영하고 있다.

‘개척서림’으로 시작할 당시에는 서부 경남의 교육·문화 도시인 진주에는 다양한 규모의 서점이 60여 개나 있던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서점의 호황기, 책만 가져다 놓으면 팔리는 시대였다. 이후 IMF와 대형서점, 온라인의 여파로 인해 진주에 있는 서점들이 점점 문을 닫고 사라졌다. 많은 서점들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도 진주문고는 매번 불어오는 위기를 꿋꿋이 극복하고 자리를 지켰으며, 진주시민들과 진주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왔던 어린 아이가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돼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서점을 방문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서점을 방문했던 고객들에게 진주문고는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진주문고가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진주문고만이 가지는 그들 고유의 서점 운영 방식과 시민들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만남과 관계의 장소로서의 사랑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진주문고는 사람들의 관심사에 주목한다. 현재 시민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들에 관한 책들을 전시하고 큐레이션 하면서 이를 SNS에 올리고 또다시 소통한다. 이런 방식은 서점을 찾는 시민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으며, 오래된 서점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지역 서점과 주민 사이에는 오랜 신뢰 관계가 있다. 서점도 지역 주민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신호를 오랫동안 보내고 있다. 34년간 진주문고가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지역 주민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서점 1층에는 아동 코너가 마련, 아이와 손을 잡고 온 어머니는 서점에 아이를 맡겨놓고 시장을 보러 간다. 아이가 책을 보고 놀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볼일을 보고 다시 서점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 사람과 책이 친해지는 장소, 책이 주인인 장소가 되길 바라는 여태훈 대표의 말처럼 진주문고는 언제든 시민들이 발걸음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진주문고 누적회원 7만명, 진주시민 5명중 1명 고객
지난해 본점인 평거점 리모델링 완료, 문화 공간 변신

1988년 ‘책마을’이란 이름으로 운영했을 때 도입한 회원제를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는 진주문고의 매출 80%는 단골고객이 주를 이룬다. 진주문고 회원제의 누적회원은 7만명이다. 진주인구가 34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5명중 1명이 진주문고 고객이라고 볼 수 있다. 진주문고 회원으로 책을 사면 5%를 적립, 5천점 이상이 되면 포인트 사용이 가능하다.

최근 진주문고는 리모델링을 통해 색다른 모습으로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본점인 평거점은 2017년 말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 진열된 책만 볼 수 있었던 동네서점이 여유 있고 편안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책을 읽으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된 것이다. 5층 건물에 학원으로 쓰였던 임대공간까지 모두 리모델링하고, 1~3층을 진주문고로 확장했다.

1층에는 지역적인 색이 깊은 ‘진주커피’라는 카페를 운영, 차나 커피 한잔을 들고 책도 보고 휴식도 겸하는 편안한 공간을 마련했다. 공간을 확장하면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 또 진주를 대표하는 지역콘텐츠관도 마련, 이곳에서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수제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진주와 관련된 도서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층에는 진주문고 문화관인 ‘여서재(余書齋)’가 고객을 반긴다. 여서재(余書齋)에서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진행, 대표문화예술인들의 강연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리모델링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강연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3층은 오로지 책을 위한 장소로 1, 2층에 새롭게 들어선 공간들에 자리를 내 주었던 책장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내부공사와 함께 20여 년을 함께했던 심벌마크도 새롭게 바꿨다. 심벌마크는 진주문고를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정병규 북디자이너에 의해 탄생했다. 새 심벌마크는 사람의 손가락 모양과 비슷하다. 서가에 기대어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과 서가에 꽂힌 책들을 상징한다.

서점을 둘러보니 독특한 서가 분류가 눈에 띄었다. ‘일과 삶의 대안을 말하는 책들’, ‘푸른 하늘을 위한 책’, ‘기억과 다짐을 말하는 책’, ‘서점, 출판, 책 이야기’, ‘서점원이 추천하는 새로 나온 책들’, ‘웹으로 만나던 소설 책’ 등으로 분류 된 책들은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이러한 코너들은 직원들의 열띤 토론과 기획을 거쳐 선정된 책들이다.

진주문고 이병진 팀장은 “진주문고는 일반분류 서가, 주제별 서가가 있고, 그 안에는 지역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서가가 따로 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시기별 이슈와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민들의 만족을 찾아가는 중이다”고 특별한 서가 분류에 대해 밝혔다.

다채로운 문화예술프로그램 마련 시민들과 소통
지역 출판사 ‘펄북스’ 설립…‘지역 인프라 활용’

진주문고는 오랫동안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왔다. 여태훈 대표는 지금처럼 책방이 문화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훨씬 이전인 ‘책마을’시절부터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신선한 시도를 해왔다. 이는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맥은 지금까지 이어져 더 활발한 문화예술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는 작가들을 후원하고 지역에 사는 고객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작가 초청 강연회, 전시회, 문화기행프로그램, 인문학 강의, 음악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으며, 박남준 시인, 공지영 작가, 김탁환 소설가 등이 이곳을 찾았다.

여태훈 대표는 “책방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상품을 취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상품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함, 문화상품을 알아보는 영민함, 직접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소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열었던 여서재(余書齋)는 이번 리모델링으로 시민의 자유로운 연대를 꿈꾸는 ‘당신의 서재’로 거듭났다. 이곳에서는 작가특강, 철학 아카데미, 인문학 프로그램, 독서모임, 전시, 공연, 낭독회, 독서회, 강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50~80명이 참가하는 큰 프로그램부터 20~40명이 참가하는 작은 강의까지 인기가 좋다. 진주문고가 마련하는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이들은 진주는 물론 사천, 함안, 남해, 창원 등 근방에서 찾아온다.

특히 지난 5월 5일 열린 류시화 시인의 신작 초청 사인회는 원래 2시간이 예정돼있었지만 열혈독자들의 행렬로 장장 5시간동안이나 진행됐다. 이날 하루 진주문고를 찾아온 인원은 400여 명이다. 이처럼 진주문고는 유명한 작가를 쉽게 볼 수 없는 지역적인 특성에 대한 독자들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독자와 작가의 만남을 연결하는 장소를 열어주는 것이다.

더불어 진주문고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서 문학거점서점으로 선정, 작은서점과 연계해 지역 주민, 청소년에게 문학 향유, 다양한 문학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문학거점 역할을 펼쳤다.

문학상주작가로는 서정홍 시인, 노희준 소설가, 박남준 시인이 함께 했다. 작가들은 1주일에 2번씩 진주문고로 출근, 문고의 서가를 함께 꾸미고, 문학특강을 진행했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이 프로그램 또한 독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병진 팀장은 “정기적으로 10명 안팎의 독자들이 참여했다. 지역민들은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기대를 가졌다. 서점에서는 작가와 함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역 안 문화자산의 공공화, 서점이라는 공적 공간에 대한 주목과 더불어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와 호응이 생겼다는 점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이다”고 말했다.

진주문고는 ‘거인의어깨’, ‘서점친구들’이라는 독서모임을 진행한다. 또 와인과 인문학 강의를 곁들인 ‘상상살롱’이라는 진주문고 이벤트 강연도 펼쳐진다. 이는 직원인 이윤호 진주문고 스토리텔러가 진행, 진주문고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다.

또 ‘책방책밤’이라는 밤에 만나는 책방을 연다. 원래 심야 책방으로 진행했지만 6월부터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8시 독자들이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독자들은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독자들이 읽고 나누기 위해 가져온 책을 추천한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독자는 상품권을 선물로 받는다.

진주문고의 혁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2015년 2월 지역출판사 ‘펄북스’를 설립, 주로 서점이나 책, 지역에 관한 책들을 발간하고 있다. 지역 출판사라는 원칙을 갖고 저자부터 제작까지 모두 지역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여태훈 대표는 “우리지역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을 팔기도 하지만 만들어보고도 싶었다. 하루하루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책의 정신에 충실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집, 꿈과 희망이 있는 집을 꿈꿉니다”

-34년 진주의 역사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진주에서 34년 동안 서점을 운영, 이제는 진주하면 진주문고가 떠오를 만큼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여 대표는 진주문고 30년을 맞이하면서 과도기에 접어든 진주문고를 ‘앞으로 새로운 30년을 꿈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변화의 설계를 결심했다. 지난해 진주문고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색다른 모습으로 지역주민들을 맞았다.

여태훈 대표는 “모든 서점이 급변하는 과도기에 접해있다. 해답은 무수히 많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서점의 고유한 기본영역을 지키고 부차적으로 새로움을 구해야 한다. 서점의 주인인 책이 뒷자리로 밀려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가 이런 변화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리뉴얼에 재투자를 하는 것은 서점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구매 유무와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쉽게 와서 공간을 즐기고 이용하고, 소비하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책도 자연히 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주문고가 진주에서 오랜 세월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과의 두터운 신뢰가 있었다.

여 대표는 “대부분이 단골손님인데 그분들도 책을 어디서 사야 편하고 저렴하게 사는지 안다. 그런데도 지역서점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특정 공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집 앞의 서점이 사라지면 그 공간을 대체할 더 좋은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간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서점도 지역 주민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늘 그 자리에 굳건히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여태훈 대표가 그리는 앞으로의 진주문고는 책과 음악과 차의 향기가 어우러진 공간, 마음껏 책의 숲을 거닐며 내면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다양한 문화장르가 자유롭게 교차하고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서점은 사람과 책,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관계의 장소로써 최고다. 진주문고가 다시 30년을 꿈꾸는, 지속할 수 있는 서점이 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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