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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령 어기고 백성 살린 진정한 관리 김영 통제사비 복원 운동 화제제166대 김영 통제사 덤바우골 화재…남망산 소나무 벌채 백성들 집 허락
국법 어긴 죄로 곤장과 파직…통영 4개동 주민 덤바우에 공덕 자세히 기록
1970년대 도로개설공사로 훼손 흔적 전무, 해풍김씨종친회
   
 

焦爛 殘氓 賴公尊安 憂殷減撤 惠周飢寒

千間大庇 一時肯搆 已經劫燼 按堵如舊

불에 다친 쇠약한 백성들이 공에게 힘입어서 편안하게 되었다.

근심 걱정을 감해주고 골고루 미친 은혜로 굶주림과 추위를 면했도다.

천 칸의 큰 집들이 일시에 지어지니

이미 큰 화재를 지나 안도하기 옛날과 같도다.

 

純祖二十九年己丑公爲統制使松亭洞民失火延燒海送亭抗北瓦洞人家數百戶盡成焦土公許給南北山之松新造家屋矣以松木濫伐事直指使啓請罷職四洞之民刻公之功德於巖石在曙町貞梁里之界海濱也此巖卽公之杖劍立於其上指揮軍民而屢日鎭火之巖也翌年庚寅刻

순조 29년 기축년(1829)에 공이 통제사가 되었으나 송정동민의 실수로 불이나 해송정, 항복, 와동의 인가 수백호가 초토화 되었다. 공이 남쪽과 북쪽의 산에 소나무 벌채를 허락, 집을 새로 짓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소나무를 남벌한 일 때문에 직지사가 임금님께 아뢰어 파직을 당했다. 이에 4개동의 백성들이 공의 은덕을 암석에 새겼다. 이 암석은 서정과 정량리의 경계 바닷가에 있었다. 이 바위는 공이 칼을 집고 그 위에 서서 군민을 지휘하여 여러 날 화재를 진화하던 바위다. 다음해인 경인년(1930)에 새겼다.

<통제사 김영 각암비문 統制使 金煐 刻巖碑文 전문>

 

국법을 어기고 남망산 소나무를 베어다 백성들 집을 짓게 한 제166대 통제사 김영(1772-1850). 그를 기리는 통제사 김영 각암비석(統制使 金煐 角巖碑文)을 복원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190년 전 지금의 정량동과 동호동의 경계인 덤바우골(큰 뜬바위가 있는 동네·큰 틈이 있는 바위가 있는 동네) 인근에 큰 화재가 발생, 민가 수백호가 불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통제영 본영이었던 이곳의 조선 경상전라충청삼도수군통제사는 제166대 김영(金煐) 통제사였다. 불이 나자 김영 통제사는 덤바우(덤바위)라 불린 이 바위에 올라 몇 날 몇 밤을 지휘하며 화재를 진압했다.

화재가 수습된 후 통제사는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남망산의 소나무를 베어다 집을 지을 수 있게 허락했다. 하지만 통제사는 이 일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파직 당했다.

궁궐 건축이나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소나무를 베어 백성들이 집을 짓게 했다는 죄목이었다. 쉽게 말해 금송령을 어긴 것이다.

김영 통제사는 이듬해 1830년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로 처벌을 받았다. 대명률(大明律) 이율(吏律) 제서유위조(制書有違條)를 위반한 죄이다. 임금의 교지(敎旨)와 세자의 영지(令旨)를 위반한 자를 다스리는 율법으로 장 100대의 형을 받았다.

김영 통제사 죄목은 임금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 백성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통제사 역시 장 100대의 매를 맞고 파직 당했을 것으로 보여 진다.

비록 임금은 그를 벌하였으나 통영 사람들은 자신들을 살려준 김영 통제사의 은덕을 기리고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바위에 그 내력을 새겼다.

그것이 바로 덤바우에 새겨진 통제사 김영 각암비문(統制使 金煐 角巖碑文)이다.

덕분인지 선정을 베푼 김영 통제사는 후일 복직돼 우포도대장과 좌포도대장을 24회에 걸쳐 지냈다. 또 순조와 철종에 걸쳐 금위대장과 평안도병마절도사, 어영대장, 형조판서, 어영대장오위도총부 도총관 등 주요요직을 두루 지내게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70년대 동문고개 도로개설공사로 인해 통영의 덤바우가 파괴되고 비문 역시 사라져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단지 통영군지(1934년판) 인편 등에 비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

최근 이순신 장군 만큼이나 통영인을 사랑한 김영 통제사 비석을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김영 통제사 후손인 해풍김씨종친회(회장 김진우)는 이같은 여론에 힘입어 지난달 17일 강석주 통영시장에게 파손된 김영 각암비 복원을 요망하는 건의문을 제출, 복원 운동에 시발점을 당기고 있다.

해풍김씨종친회 김진우 회장은 “정량리 해변에 있던 김영 통제사 각암비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문화의식의 표본”이라며 “단순 통제사 공덕비를 벗어나 통영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통영의 역사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비석이 복원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문화 전문가들 역시 “자신의 파직을 알고도 백성을 사랑한 대표적 표본인 김영 통제사의 비석 복원은 통영 역사의 또다른 스토리텔링의 산 증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정량·동호동의 덤바우골·덤바위길 지명과도 연결되고, 통영관광 선호도 1위인 동피랑의 더 오랜 역사 조선 통제영 시절 통영성 동포루와도 밀접하다”고 말했다.

정량·동호동 덤바우골 주민들은 “김영 통제사는 덤바우골에 사는 우리들의 자부심이다. 국법을 어기면 개인적 후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백성을 먼저 살린 그런 통제사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비석복원은 대환영”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여기가 동피랑 오르는 길목이라 관광객들에게도 통영의 또다른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문화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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