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는 끔찍하지만, 표류기는 훌륭하다. 표류의 시작과 과정은 극한의 공포지만, 표류의 끝은 안도와 환희를 넘어 자부심이다. 표류한 사람에겐 고통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설렘과 배움이다.

표류, 도전 끝에 맞닥뜨린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뜻하지 않게 대자연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결과다.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은 산속 표류기의 연장선 위에 있는 지혜의 결정체다. 그렇다. 표류는 고통스럽지만, 표류기는 후대에 길이 남는 지혜가 된다.

장철수 대장과 발해 1300호는 고대의 역사를 복원, 복기하기 위해 출항했다. 하지만 근대의 역사가 삭이지 못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장 대장은 짧은 표류기를 남겼다. (참조. 제38화. 신안 사람 문순득과 통영 사람 장철수 / 제40화. 철수 형의 꿈)

조선 전기 성종 때 추쇄경차관(제주로 숨어든 죄인을 붙잡는 관리) 최부는 제주 앞바다에서 떠내려갔다가, 중국 강남과 북경을 잇는 1,800km의 대운하를 지나 조선으로 돌아오며 겪은 내용을 <표해록>으로 남겼다. 그의 표해록은 조선 최고의 표류 기록이었다. 15세기 명나라의 사회, 정치, 군사, 경제, 문화, 교통, 언어, 풍경을 담은 그의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힌다.

하지만 험난한 바다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와 마르코 폴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최부도 역사의 소용돌이를 넘지는 못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제주 관원 김대황은 숙종 때 조정에 진상할 말을 싣고 제주를 떠났다가 31일간 표류한 끝에 베트남에 도착하였다. 그곳 국왕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머물다 중국 배를 얻어타고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서귀포로 돌아와 <표해일록>을 남겼다.

제주 청년 장한철은 영조 때 과거시험 보러 한양으로 향하다 표류하여 오키나와 유구국으로 떠내려갔다. 베트남 상선을 얻어타고 귀국하다 전라 창선도 앞바다에서 다시 난파하여 29명 중 8명만 살아남았다. 그가 남긴 <표해록>은 우리나라와 오키나와의 오랜 관계를 담고 있다.

전남 우이도의 홍어 장사꾼 문순득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로 떠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중국 배를 얻어 탔다. 그런데 또다시 풍랑을 만나 여송국 필리핀으로 흘러갔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이곳에서 장사 수완을 발휘하여 돈을 벌어서 중국 배를 타고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마카오를 거쳐, 광주, 남경, 북경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귀국하였다. 당시 우이도에 유배 온 정약전이 그의 이야기 <표해시말>에 담았다.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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