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은 현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이자 통영의 자부심이다. 지난해 통영을 찾은 관광객이 100만 명가량 줄었는데, 통제영과 함께 선생의 기념관은 방문객이 늘었다고 한다. 산양읍 기념관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은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만나고,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 이야기를 찾아 시내 곳곳을 누비기도 한다.

박경리 선생을 한 단어로 떠올린다면 '생명'이다. 선생의 생명론은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에게 더욱더 깊게 다가온다. 기념관에서 만난 생명에 관한 메시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전율이 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평생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생명 이야기가 가득하다.

일본의 도발과 경제침탈, 그리고 이로 인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한일관계가 요동치는 요즈음, 생전에 선생이 일본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일본산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 1990년 '신동아' 9월호에 쓴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는 글이 폐부를 찌른다. 8월호에 실린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의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에 대한 반박 글이었다.

선생의 일본 비판은 생명론 만큼이나 날카롭고 뜨거웠다. 그래서 선생을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하고 냉철한 일본 비판론자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선생은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곰배상은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상을 말한다. 우리에겐 곰배상이 정성의 표현이지만, 그들에겐 무력함과 굴복의 표현으로 이해된다면, 서로를 위해 곰배상을 차리지 않는 것이 옳다. 호의는 상대가 호의로 받아들일 때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일본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지는 않았다. 일본과 일본 사람을 향한 질타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선상에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최근 일본 정부의 행태를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간파했다. '생각건대, "한 시절 전만 해도 조선인은 우리 앞에 우마(牛馬)나 다름없는 존재 아니었나. 이제 와서 제법 사람 노릇한다. 도저히 보아줄 수 없군" 그런 불쾌감도 있었겠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우리에게서 문화를 쪼금씩 빌려 갔었던 무지하고 가난했던 왕사(往事)로 하여 사무쳐 있던 열등감 탓은 아닐까' 이런 열등감에 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은 헛꿈이 겹쳤을 것이다.

또한 선생은 반일의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 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 하는 것이다"

선생은 말한다. "저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체제가 뭐냐를 물어야지요" 그렇다. 일본의 극악한 식민지 약탈과 반성하지 않는 치졸함, 적반하장으로 경제 침탈을 하는 그들을 두고 일본의 체제를 비난할 일이지, 일본 국민들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오늘도 선생은 기념관 마당에 서서 책 한 권 들고 남쪽 바다를 깊게 바라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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