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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지 시인의 시집 '시풍경' 읽기
   

최유지 시인은 통영 도남동에서 태어나, 현재는 일본 동경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 동의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1993년 《문예사조》지에 「네 얼굴을 보면」, 「꽃들은 나체다」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꽃들은 나체다〉(1994), 〈공감의 거리〉(한·일 대역판, 2014), 〈슬픔이 그대의 가슴을 흔들 때〉(2017)가 있다.

이 외에도 그는 2013년엔 일본 동경 라보 모텔 소속 《미(美)》(출판사·비스토 광문사)라는 잡지에 독자 모델로 선정되어 활약했고, 근간엔 크리마(CREEMA, 일본 야후 재팬 사이트)라는 곳에 지갑 촬영 대상이 되는 등 그의 대외 활동도 눈여겨 볼 수 있다.

꽃들은 나체다/온갖 수줍음으로 세상을 숨기고/눈을 감아 버렸다/나비가 흰 속살을 유혹하고/젖고름에 그리움을 푼다//솜털의 가녀린 한 옥타아브/생경한 기운으로/문(門)이 열리고/살포시 묻어나는 향내로/서러움을 접는/꽃들은 나체다 -「꽃들은 나체다」 전문

위 시는 그의 등단작이자 제1시집 표제작이다.

'꽃'은 분칠이나 치장 또는 화려한 옷 따위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나체' 그 자체의 이미지이다. '수줍음'이 존재하고 '눈'을 감고 멀리하면서 세속의 '세상'과는 거리를 둔 존재이다. 초월의 경지를 의미한다. "솜털의 가녀린 한 옥타아브/생경한 기운"은 기초체력이며 저변에 깔린 은은한 면역력이다. 비가식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살포시 묻어나는 향내로/서러움을 접는/꽃들은 나체"라 하지 않는가. '꽃'이 '나체'로 이어지는 비유가 강렬히 투영되어 있다. 이렇게 그의 초기 시는 난해한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3권의 시집을 거쳐 이번에 발간한 시집 〈시풍경〉은 사뭇 종전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그의 시적 의식화에 대한 관심은 새벽 이미지로부터 기인한다. 이제 새벽은 '작은 생명'인 '새'(=소녀)들의 '우주'로 "밤은 스스로 걸어가서 새벽을 잉태"(「소금도시」)한다고 한다. 그의 새벽은 열린 가능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연이은 화두는 화자 자신이 봄을 일깨워주는 새가 되어 세계와 어울리어 봄의 경관을 읊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은 결국 세계와의 동일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가 의미화 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장대한 사상이 아니라, 봄의 사물들을 이미지화 시켜 '새' 대신 전달하는 봄의 동승자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형상화 하고자 하는 목적물을 발견하고, 시가 수수하게 생산되길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의미를 다양하게 채색하는 데까지 진전시킨다.

다음은 이 봄의 계절을 두고 여름 날 그토록 신록이 무성했던 시절을 지나 '수국'의 계절에 와서 닿는다. "이제 잎이라도 떨어져 내리면/성큼 가을이겠다"라고 한다. 그는 "봄날에 밟았던 꽃의 상처"를 생각하고, 가을의 "스산한 듯한 이 공기의 흐름도 하나의 선율"(「그대, 어느 봄날에 밟았던 꽃의 상처는 잊었는가」)이 된다. 성큼 코앞에 다가온 가을을 맞이하여 바이올린을 켠다. 선율과 음률이 함께 어우러져 은은히 가슴에 젖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국에 와서 그는 살아오면서 동참했던 겨울에 대해 읊고 있는데, "추위에 옷을 벗고 홀로 핀 꽃/퇴색된 채 가늘게 흔들리는 강아지풀/말없이 말 걸어오는 동물들의 눈빛"에서 "더 진솔하고 아름답고 따스"(「진실로 진실한 것으로만-14」 일부)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 됨이고 복된 삶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그는 은은한 혹은 강렬한 그리움의 성곽에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거쳐 온 것에 대한 생각과 나아갈 것이 관한 설계에 몰두한다. 시인의 마음에는 늘 '공감의 거리'가 있어 길을 가는데 여유로움을 준다. "누군가 있다는 건/길을 걸으면서도/무심히 미소 짓게 하는 그것"으로 위안이 되고, "빗장을 열면/꽃잎 되어 흐르는/바람의 느낌"(「공감의 거리」), 그것으로 그의 응얼거리는 사색은 생겨난다. 사색은 그의 그리움의 의미를 확대시키는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가 난해한 시쓰기에서 출발해서 그만의 시적 보폭인 순조로운 서정의 운문 시로 다가온 것은, 오히려 독자를 친근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는 본 시집의 시편들에서 의식화에 대한 관심인 새벽 이미지로 출발해, '새'=소녀를 통해서 그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의 세계 '꽃밭'을 일구어 놓은 것을 보았다. 더불어 "누군가의 절실했던 기도"로 온 봄의 계절과 "어머니 대지의 품"같은 가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리움'이 동면의 겨울과 '공감의 거리'를 훤하게 밝히는 심중도 접하게 된다.

김보한<시인·시민기자>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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