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주<전 통영시장·수필가>

민선시장 부임 초에 시작했던 중요 과제중의 하나가 시민헌장을 만들고, 그 내용을 돌에다 새기는 일이었다. 

필요한 절차를 거쳐 문안을 확정하고, 이 작업을 담당할 조각가로는 통영출신이면서 부산의 B대학교 예술대학 한인성 교수를 선정했다.

그는 20대 약관에 국전 연속 4회 특선이라는 위업을 쌓으면서 30대 초반부터 최연소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작가가 무슨 상을 받고 어떤 위치에 있다고 해서 예술적 역량과 반드시 비례될 수는 없지만, 세상 따라 조명 받고 싶어 안달하는 류(類)가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런 류에 속하지 않는 겸손한 모습이 오히려 매력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조각(彫刻)이 어떤 조류와 유행에 휩쓸렸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시류와도 상관없이, 자신만이 추구하는 작가 혼을 끈질기게 불태웠던 것으로 어느 평론가가 말했다.

또 그는 인체구조의 좌우대칭작업이라는 영역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해 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활동 범위도 꽤 넓고 왕성했다. 한때 예술대학 학장 보직을 수년간 맡은 적도 있고, 서울·부산을 비롯한 전국에 고루 수많은 조형물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런 바쁜 틈에도 현대미술관 등 중량 있는 국내 초대전은 물론, 이태리 미술관 초대전, 중국 초대전 등 국제무대에까지 활동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전시회라면 거의 빠진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 작품제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나 고향에 시민헌장 비를 세우는데 협조할 수 있는지 의향을 타진해 보았더니, 오히려 고마워하면서 작품사례비를 사양하는 조건까지 붙였다.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작품은 바다형태의 평면 위에 세 개의 크고 작은 섬을 배열하고, 그 섬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둥글넓적한 돌을 얹어 비문을 새겼다. 마치 헌장 비문의 첫 머리인 '섬, 바다, 뭍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이하 생략)' 내용을 작품에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부드러우면서 강한 이미지도 풍겼다. 절제된 간결함 속에서 넉넉한 깊음을 느낄 수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서게 하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작가의 애향심이 진하게 묻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조각에 스며들었던 이런 저런 매력과 다시 만나기 위하여 여러 차례 나는 시민헌장 비를 찾아가 보았다.

작품을 화폐가치로 따질 수야 없지만 그것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고향사랑을 실행에 옮겨 흔적을 남긴 마음이, 그 헌장 비를 볼 때 마다 값지게 느껴졌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고향 사랑까지 묻어있는 시민헌장 비.

이 작품이 내가 보기에는 시민의 소망(所望)을 이루게 하는 에너지쯤으로 보였다.

언젠가 그 비석에 담긴 바람직한 시민정신이 널리 알뜰하게 실천되는 날, 이 땅은 태양처럼 빛나리라.

그 빛, 영원하기를 기원하면서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되돌아본다. 말로만 외치는 사랑보다, 자발적이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 즐겁게 실천한 애향심이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 모두가 이런 애향심을 고루 갖추기를 기원하면서, 내 자신의 모습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는 동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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