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자가 아닌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하도록 법 개정 요구

지난 9월 1일, 창원에 있는 낙동강유역환경청 앞에서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 연대'를 만들었음을 알렸습니다. 말이 조금 복잡하지요? 저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요, 설악산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삼십 명 넘는 사람들이 돈 한 푼 안 받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뭘 하겠다고 모였는지, 궁금하신가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인데, 최대한 쉽게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곳을 개발해서 건물 같은 걸 지으려면, 그렇게 개발하기 전에, 그 개발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도록 법에서 정해 놓았습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커서 개발 사업으로 인한 이득보다 환경 피해가 더 크다면, 그 개발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게 환경영향평가의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자유의 권리: 남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한도에서만

내 땅을 내 맘대로 개발하겠다는데, 왜 내 맘대로 못 하게 하는 걸까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요? 어긋나지 않습니다.

독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남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한도에서만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평등의 이념이라고도 하지요? 만일 남의 자유를 빼앗으면서까지 내가 자유를 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내가 남을 죽이고 싶을 때 죽이는 자유를 가진다면, 모든 사람은 남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어서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내가 남의 돈을 빼앗을 자유를 가진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돈을 가질 자유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면, '남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한도에서만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자유를 다른 말로 권리라고도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자신의 신체를 지킬 권리,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권리, 깨끗한 환경을 누릴 권리, 학교를 다닐 권리, 나라를 지키는 걸 도울 권리 등 여러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이런 권리를 누릴 때,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누리는 권리, 즉, 자유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내 땅을 개발하면 생기는 일: 남의 환경권 침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 땅을 내 맘대로 개발하겠다는데, 그걸 막는 것은 자유의 원칙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요? 아닙니다. 내 땅을 내 맘대로 개발할 때 남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내 땅을 내 맘대로 개발하는데,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내 땅에 공장을 짓는다고 생각해봅시다. 공장을 짓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공장을 운영하다보면 공기를 오염시키는 물질을 굴뚝으로 내뿜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오염물질 때문에 공기가 나빠지고, 그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은 폐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냐고요? 예를 들어, 미세먼지 때문에 호흡기 질환에 걸려서 자기 운명보다 더 일찍 죽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만 매년 몇만명이나 되고, 그것을 돈으로 따지면 10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장을 지어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는 건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심각하게 빼앗는 일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폐수를 배출하면 물이 오염되고, 바다가 오염됩니다. 수질 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막대합니다.

그럼 어떤 개발도 하지 말자는 소리?

그러면, 제가 지금 어떤 개발도 하지 말자는 소리일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국민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개발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겁니다.

어떤 개발 사업을 계획했다면, 그 개발 사업으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보고, 그것이 너무 클 경우엔 개발을 하지 말자는 것이 환경영향평가의 취지입니다. 또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있지만, 개발의 필요성이 더 크다면, 그런 환경영향을 줄이면서 동시에 개발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현재 환경영향평가 제도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재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국민이 가진 환경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그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발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대행업체에게 돈을 주고 시키기 때문입니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가 만들어진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동안 환경영향평가는 내내 그랬습니다. 개발업자가 대행업체에게 돈을 주고 맡기기 때문에, 대행업체는 맨날 '이 개발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으니, 개발해도 된다'라는 보고서만 썼던 것입니다. 매년 작성되는 수백 건의 환경영향평가가 죄다 그렇습니다.

개선 방안

그렇다면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환경영향평가를 개발업자가 하지 말고, 정부가 하면 됩니다. 그 대신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데도 돈이 들기 때문에, 그 필요한 돈을 개발업자가 내면, 그 돈으로 환경부가 대행업체를 선정해서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국민이 가진 환경에 대한 권리가 더 잘 지켜질 수 있습니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 등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개발사업자가 아니라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 제도'라고 부릅니다.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비용을 개발사업자가 제3자에게 공탁하면(맡겨두면), 그 돈으로 환경영향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지 2년이 훌쩍 지나도록 이것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이 공약에 대해서 검토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데요, 읽어봤더니, 이걸 실행하기가 힘들다면서 구차한 변명만 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단체들이 이번에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전국 연대'를 만든 것입니다. 전국 연대는 앞으로 국회를 설득해서 환경영향평가법을 바꿀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이 누릴 환경의 권리가 더 잘 지켜질 것입니다. 당장 우리 통영만 하더라도 안정에 들어서는 화력발전소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고, 송전탑 때문에 전자파 피해를 입게 되고, 온배수 때문에 굴양식장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화력발전소 환경영향평가서엔 화력발전소를 지어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은 국민들이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더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일입니다. 통영시민 여러분도 응원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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