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는 고시조를 거쳐 개화기 시조(근대시조)에 와서 정립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많은 진통을 겪는다. 일부는 아직도 근대시절의 외재율 규정을 도외시하고 자수율의 파행을 고집하고 있다.

이를 일컬어 파행시조라 한다. 늘샘 탁상수는 평생 엄격한 정격시조의 작품을 남겼다. 하보 장응두는 사설시조(근래에는 장형시조라고도 한다)를 쓸 바에야 아예 자유시 쓰기를 권했고, 초정 김상옥은 자수율이탈의 파형시조를 3줄로 된 시(詩)라고 해서 3행시라 규정해 두었다.

개화기 시조 이후의 길로 접어들면서 가람 이병기, 노산 이은상 같은 대표적인 시조시인도, 이 파형시조를 주장하거나 직접 창작의 면모를 보여준 예는 흔하다. 이 학설은 현재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 간간이 학자들 간에 충돌되어지기도 한다.

현대시조는 음수율·구수율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되며 이의 시조를 정격시조 또는 평시조라 칭한다. 구체적으로 단시조, 연시조를 그 범위의 범주에 한정해 두었다.

김승봉 시인은 2004년 계간 『현대시조』(1980년 3월 1일, 노산 이은상 선생과 초정 김상옥 선생이 주축이 되어 창간)로 추천을 받고, 15년이라는 세월을 넘겼다.

이번 김승봉 시인의 첫 시조집 《작약이 핀다》는 정격시조집으로서, 광의적으로 3가지 성향으로 대별되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그가 관심하고 있는 바다와 관련된 것에서 얻어진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시인의 등단작품인 시조 「닻」은 '풍랑' 앞에서 "장승처럼 버티라" "돌섬처럼 단단해라" "차라리 너울보다 먼저 갯벌을 딛고"서길 비유법을 동원 집중하고 있다.

'닻'은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곧은 심지(心地)가 무너지면 사업은 도산의 길로 인생은 파멸의 행로로 들어서는 것이다, 「두미도」는 단종의 유배지를 등가물로 설정해서 "가슴속 비밀의 섬"을 그리움에 얹어두고, 「매물도에서」는 그곳의 "높다란 이불 파도"와 "갈매기(는) 높이 날아 등대섬에 이"울고, "산다화 붉"은 모습까지 스케치되어 있다. 「붉은 바다」는 적조로 인해 고통 받는 어업인의 아픔을 대변하고, 「불혹」은 그의 소금기 묻은 삶의 "햇살도 바람에 밀려 구름 속에 숨어"들거나 "쥐었다 놓친 꿈들이 파도 되어 휘날"린 아쉬움도 들뜨고, 「해삼」은 바다 생물들을 통해 "철저한 생존법칙"으로 "세상을 동글게 사는" 내력을, 「채석강」과 「새만금」은 "장엄한 자연을 두고 합장하는 저녁놀"과 "숨 쉬는 생명체들이 선명하게 꿈틀"댐을 시적으로 구성시키고 있는 것을 본다.

두 번째는 시인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소재에서 영감을 얻은 결과로 보인다, 시인의 결 맑은 심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서, 시조 「개화」는 '엄동'의 '겨울나기'를 거쳐서 '잎'이나 '꽃'을 "붉은 입술"로 의인화 시켰고, 표제작 「작약이 핀다」는 "빠알간 속살을 품은 대궁에서" 작약이 "영그는 (꽃)봉오리"를 통해 "고단한 신열"의 산고로 전환시키고, 「봄비」, 「방울토마토」, 「겨울눈」은 겨울에 "꿈꾸던 씨앗"이 봄에 "무성한 자양을 안고" "새 생명의 울음소리"로 탄생하는 경이로움을 보이고, 「벤자민과 살다」는 함께 숨쉬는 '벤자민'을 통해서 일상적 삶의 다정다감함을, 그리고 「무꽃」은 '억척으로' "노오란 꽃 대궁 하나 피워" "침샘을 자극하는 맵싸한" 즉, 일용할 양식인 '무'를 노래한 것이 눈에 곱다시 든다.

세 번째는 시대나 생활이 주는 영향에서 비롯되어졌다고 생각된다. 그 생성물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시조 「밤의 노래」와 「빗소리」는 "파편된 일상"을 잠재우며 "또렷한 내일을" 기약하고 밤의 '달맞이 꽃'을 가슴에 담아, '빗소리'를 통해 그의 '영혼'을 여는 기교도 다졌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생활을 기리어 그 시대의 "준엄한 고함소리"를 은밀히 엿들을 수 있고, 「민통선에서」는 "분단의 역사"를 배경의 자연물에 동화시켜 남북이 대치된 현시대의 허무함을, 그리고 「폐차장에서」는 그가 "동행했던 소나타 4778"을 폐차시키면서 자상하게 "이별연습"을 하는 시편들도 의미를 가져다준다.

일일이 열거한 시편들 외에도 꽃이나 새 등을 노래한 것이나. 통영풍경이나 역사, 여행에서 얻은 정감, 먹을거리, 잔잔한 사연 등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것들에 관심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시편들은 자유시형에서 보여주는 비유의 연결고리를 의미화 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시조의 본류인 자연향토서정에도 곁들여 시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김승봉 시인의 삶에 관해 주위에서 보아 온 바에 의하면 심성이 고운 시인으로 평하고 싶다. 현재까지 그의 시편들이 본 시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부분이 많았듯이, 미래는 밝아야 하고 희망적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시조시편들을 생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평자의 솔직한 심정임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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