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과 달빛이 교대로 부서져 내리는 유달리 푸른 통영항구와, 해변의 하얀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남망산 언덕에 시민문화회관 건물이 자리 잡아 준공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주변에는 불량 주택들이 많아, 아름다운 바다 조망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시(市)에서는 그 불량 건물들을 정리하고, 주민들을 시내의 새 아파트로 이주시킨 후, 그 자리에다 조각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이 일을 추진할 전문가로, 서울 올림픽공원 조성 때, 솜씨를 보인 J 대학교 예술대학 심문섭 교수를 선정 했다. 그는 통영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청년 비엔날레에 세 번이나 초대되는 등, 국제적으로 작품 활동이 활발한 경력이 있었던 조각가였다. 일찍부터 국전에서 그의 예술성이 인정되어, 국회의장 상을 비롯한 여러 차례의 문교부장관 상도 수상했다. 한국예술평론가협회의 최우수 작가 상까지 받는 등 국내외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공원조성 방법의 격을 높일 수 있는 국제조각심포지엄 쪽을 택했다. 

역시 심교수가 교섭이 가능했던, 미국·영국·스웨덴·이스라엘·베네주엘라·그리스·중국·일본·프랑스 등에서 열 명의 작가와, 내국인이면서 세계무대에 활동하는 수준 급 작가 다섯 명을 참여케 했다.

이렇게 열다섯 명의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남망산 현장에서, 나름대로 주변 경관에 어우러지는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창작 혼을 불태웠다. 그럴 때 심교수는 자신도 작품을 창작하기에 바쁜 터에, 외국인 작가들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데 전력을 다한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 심포지엄을 주선한 심교수의 작품 「은유-출항지 METAPHOR」를 만나보기로 한다. 이 작품은 쇠로 만들어졌다. 언뜻 보기에 난해하여 무엇을 형상화했는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앞의 표석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담겨있었다. 

출항지의 빈 배와 만선의 꿈을 안고 미지의 지점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인간의 여정을 바다와 배의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는 조각이다.

작품에서 안과 바깥, 열림과 닫힘, 이어짐과 단절의 요소를 반복 교차시킴으로써 허와 실, 음과 양, 무한과 유한이라는 동양적인 윤회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을 여기에서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 장황할 것 같아서 그 작품명만 나열해본다.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 서 있는 기계>, <망산望山>, <통영의 통과 가능한 이방체>, <분재>, <출산>, <반 중력의 곡선>, <감시초소>, <잃어버린 조화/ 몰두>,  <4개의 움직이는 풍경>, <은유>, <물과 대지의 인연>, <허공의 중심>, <관계 항(꿈꾸는 언덕)>, <FLOWER '97. III DREAM STORY> 등이다. 이렇게 작품명만 보아도 그 분위기의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남망산 국제조각공원이야말로 통영 시민의 문화의식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사업이다. 아울러 문화적인 환경도 한 단계 격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조각공원이 단시일 내에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순전히 심교수의 능력과 열정적인 애향심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회관 주변에 있던 낡고 높았던 건물들을 철거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하여 확 트인 항구를 조망할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나타난 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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