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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28 - 무덤가에서 길을 찾다
   

한산도엔 임진왜란과 관련되었다고 알려진 지명이 마을마다 골마다 널려 있다. 두억리, 야소골, 염개, 창동, 하포, 진두 등 거의 모든 지명이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 지명이 임진왜란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이야기 만들기(스토리 텔링)'를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과 삼도수군통제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후대 사람들이 각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제180화, 제181화 참조).

제승당과 의항, 문어포 마을을 포함하는 두억리(頭億里)가 대표적인 경우다. 머리 두(頭) 자와 억 억(億) 자를 쓴다. 임진왜란에서 패한 왜군들이 한산도로 헤엄쳐 나오자 이들을 한 곳으로 유인하여 수많은 왜적의 목을 베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심지어 왜적의 머리를 묻었다는 매왜치(埋倭峙)도 있다. 두억리의 토박이 지명은 두럭개 또는 두룩개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포구 마을을 뜻한다. 매왜치는 매화치(梅花峙) 또는 매화봉(梅花峰)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진도에 가면 왜덕산이 있다. 명량대첩에서 바닷가로 떠밀려온 왜군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곳에 묻어준 공동묘지다. 왜군들한테 덕을 베풀었다는 뜻의 왜덕산(倭德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동마을 사람들에게, 바닷가로 떠밀려온 왜군의 시신은 피맺힌 원한의 대상이 아니라, 바다에서 죽은 불쌍한 영혼이었다. 흰옷 입은 선인들의 모질지 못한 모습이 비친다.

일본 교토에 가면 코무덤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조선 사람들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산목숨이 전리품이요, 신체의 일부가 전과의 징표였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닿을 듯 가까이 살면서도 그렇게 결이 달랐다. 훗날 한쪽에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또 한쪽은 그런 식민주의자들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일구려는 의지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무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덤의 형식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적, 공간적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유골과 부장품을 연구하면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과 함께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습속 등을 알 수 있다.

제단, 신전과 함께 무덤은 고대 사회의 3요소다. 만주와 내몽고 일대에서 쏟아져 나온 무덤과 제단, 신전들로 인해 배달나라의 신시와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황하 문명보다 1천 년 이상 앞선 '동이 문명'의 증거를 어쩌지 못해 중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한 것이다.

두억리와 왜덕산과 코무덤. 우리는 어떤 무덤을 선택할 것인가. 무덤은 과거의 매장이 아니라, 미래로 건너가는 다리다. 첨예한 한일갈등의 시기다. 일본 정부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욱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은 미워할 이유가 없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저자주. 사진은 두억리에 있는 제승당 앞 수루(戍樓)를 바다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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