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미식축구 사랑은 유별나다. 유명 대학들엔 축구팀이 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 간 축구 라이벌전은 무척이나 뜨겁다. 응원전은 제2의 라이벌전이라 투자와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오하이오 주립대 미식축구팀은 미국 내 최고 명문 그룹에 드는 팀이다. 대학 교정에 자리 잡은 '오하이오 스타디움'은 자그마치   10만 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1922년 건립된 후 여러 차례 증축해온 결과인데, 한때 증축과정 중에 운동장 높이가 말썽이 되었다.

대학의 심장인 도서관 건물보다 더 높게 올라가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설계안은 부결되었다. 결국 높이를 올리는 대신 땅을 파서 밑으로 확장하였다. 축구 사랑도 대학의 정신을 넘지 못했다.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건물을 지을 때 원칙을 지키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미국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통영의 건축 원칙은 무엇인가? 채산성인가, 주민들의 생활권인가, 편리성인가, 경관인가?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도 통영 건축의 제1 원칙은 스카이라인과 역사와 전통문화와의 조화를 꼽는다. 그래서 미륵도 스카이라인을 잘라버린 S 호텔과 세병관을 짓누르고 우뚝 선 H 아파트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오하이오 주립대는 대학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다. 통영이 지키고자 하는 정신은 무엇인가? 통제영 400년의 역사에 걸맞은 건축은 어떤 모습인지, 수려한 풍광이 일품인 해안선과 하늘선에 어울리는 건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걸 논의하는 자리는 어디인지, 누가 결정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는지, 미래세대의 삶이 고려되고 있는지, 시민들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하는지.

지금은 묻지 않는 이 질문을 우리 아이들은 물을 것이다.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행동하지 않는 기성세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부은 '기후 소녀' 그레타 툰베리(16)가 그랬던 것처럼.

남망산에 110m 높이의 탑을 세우려는 시도에 우려하는 시민들이 많다. 통영의 경관을 완전히 뒤바꿀 토목공사를 왜 이렇게 속전속결로 처리해버리는지 모르겠다는 '아우성'이 바닷바람에 펄럭인다. 어려운 통영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리라 기대하면서도, 문전옥답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어린 '서희 아씨'의 심정이다. 권리는 있으나 권력은 없는.

통영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모든 홍보물에서 그 이름을 들먹이는 윤이상 선생과 박경리 선생이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 하실까? 나이 많은 노인에 불과하니 아예 물어볼 필요가 없을까? 통영다운 통영을 일구고 세상에 통영의 이름을 펼친 이순신의 정신, 윤이상의 정신, 박경리의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 것인가?

남망산의 밤은 어느 때 보다 깊다. 강구안의 불빛은 더욱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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