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1차 본선 경연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던 한 참가자가, 곡이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는 대목 첫 마디에서 엉뚱한 선율을 연주하고는, 잠시 멈칫했다가 티 나지 않게 상황을 수습하고 부드럽게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이때 백스테이지에서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따라가며 곡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고, 실황 중계 자막이 제때 나오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곡 진행 상황에 따라 직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무전으로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실수를 저지른 참가자가 악장 사이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 그리고 하이든 소나타를 끝내고 다른 곡을 연주하기 전에 다시 눈물을 닦는 모습까지 실황 중계 화면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그 참가자가 연주를 마치고 나올 때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울한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심사 결과가 나왔을 때였습니다. 2차 본선 진출자 명단에 그 참가자가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 참가자의 연주가 실수를 만회할 만큼 훌륭했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결과 발표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그 사람에게 제 동료들이 재빨리 연락해서 2차 본선 준비를 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 사람은 끝내 결선에 진출했고, 2위에 입상하는 대역전극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참가자의 이름은 박경선입니다.

1위를 차지한 임윤찬은 처음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결선 때에는 박경선과 접전 끝에 우승했을 뿐아니라 젊고 유망한 연주자에게 주는 박성용특별상과 관객 투표로 주는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특별상까지 휩쓸었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은 만 15세로 중학교에 해당하는 예원학교 3학년이라고 하네요. 역대 최연소 우승자이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규정상 나이 제한을 불과 몇 개월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고도 합니다.

임윤찬의 우승을 보면서 저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떠올렸습니다. 조성진이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을 때 나이가 15살이었지요.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적인 스타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습니다. 조성진은 파리 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를 사사했고, 그 미셸 베로프가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이었다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하마마쓰 콩쿠르에 우승한 15살 조성진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15살 임윤찬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을 보았지요.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은 달랐지만, 15살 나이를 믿기 어려운 대단한 실력을 보여준 점은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15살 조성진의 연주를 평가한 제 글을 올해 임윤찬의 연주에 대해서도 그대로 쓸 수 있을 듯합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래서 기대됩니다. 10여 년 뒤의 임윤찬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요?

올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는 결선 진출자 전원이 한국인이었다는 점이 예년과 달랐습니다. 국제 콩쿠르인데도 한국인이 상위권을 '싹쓸이'해버리니 조금 난처한 것도 솔직한 마음인데요, 이와 관련해 미셸 베로프 심사위원장이 시상식에서 한 말이 멋져서 인용합니다.

"올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는 154명이 지원했으며 국적은 다양했습니다. 심사위원 가운데 2명이 한국인이고, 7명이 외국인입니다. 뜻밖의 결과는 오히려 모든 심사위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심사했음을, 그리고 그 결과 가장 뛰어난 참가자가 입상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는 참가자 가운데 심사위원의 제자로 2년 이내에 3개월 이상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해당 심사위원은 해당 참가자를 채점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본선 진출자 가운데 해당자가 2명 있었는데, 둘 다 결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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