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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어머니 박경리와 고향 통영 ①박경리 문학의 원천 통영충렬사 동백꽃이 50번이 피고 나서야 도착한 고향 통영, 나는 세병관 기둥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고향이란 인간사와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고향 통영을 떠난 세월은 생존 투쟁의 나날이었다. 충렬사 동백꽃이 50번이나 피고 지고 나서야 도착한 고향 통영, 나는 세병관 기둥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2004년 박경리 선생 한산신문과의 대담 중>

통영이 낳은 문학의 어머니 박경리(1926-2008)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던 고향땅에 영원히 귀환한 지 만 11년. 이제는 이순신 장군 독전 소리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미륵산 기슭에서 통영의 영원한 어머니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5월 5일은 어린이날 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한국이 낳은 대문호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를 기리는 특별한 날로 지정됐다.

짧은 육신의 삶을 살았으되 대붕같이 유유자적하던 한국문학의 어머니 박경리.

선생은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하며 스스로 떠남을 홀가분하게 여겼으나 남은 이들은 큰 상실감과 슬픔에 몸부림쳤다.

선생의 짧은 삶 안쪽에 큰 도가 내접했으니 그 삶은 큰 삶이요, 긴 삶이었다. 몸통이 크고 거느린 가지와 잎이 많은 만큼 드리우는 문학계 그늘 또한 컸었다. 거목이 쓰러지면서 그 그늘도 사라지고 문화계는 땡볕을 견뎌야만 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꿈
그것이 태몽이었다는 것이다.
하여 어머니도 주위사람도
아들이 태어날 것을 믿었다고 했다.
……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시 '나의 출생' 중>

1926년 음력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읍 명정리 402번지(현 문화동 328번지)에서 아버지 박수영·어머니 김용수씨의 맏딸로 태어난 박경리. 본명은 금이(今伊).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책보기를 좋아해 책상 밑에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기를 즐겨했던 소녀 박경리는 어머니가 바느질 등을 하여 근근히 생계를 이어갔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궁색한 법이 없었다고 한다.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했다 표루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해 25년 만인 1994년에 완성,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생전 명정골 동백꽃이 50번이 지고 피는 세월 만에 고향을 방문, 어릴 적 뛰놀던 세병관 기둥을 잡고 회한의 눈물을 보였다.

이제 그가 떠난 지 만 11년 또 다시 눈이 시린 연두빛. 이제는 떠나보낸 슬픔 보다는 그를 추억한다.

여든 두 살의 나이로 영원한 삶의 터전인 고향으로 돌아온 박경리 선생 11주기를 맞아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생명 존중 사상을 기리기 위한 각종 추모 행사가 통영에서 펼쳐졌다.

또 박경리 탄생지와 거주지, 김약국의 딸들 작품 속 등을 테마 관광지로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11년이 흐른 지금, 그의 흔적은 초라한 박경리기념관 뿐. 뿌리 찾기란 쉽지 않다.

소설가 박경리는 "바다의 도시 푸른 통영.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혈관 속에는 400여 년 대대로 예술 DNA가 흐른다"고 했다. 그럼 박경리 소설 속 통영 DNA는 무엇일까. 그리고 통영 속 박경리의 예술 DNA는 무엇일까. 나아가 세계문학 속 소설가 박경리는 무엇일까.

그 해법 찾기에 한산신문과 독자가 함께 긴 여정에 나선다.



김영화·김봉애·박초여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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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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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인 2019-11-27 09:35:13

    기사를 읽으면서 이 좁은 통영 땅덩어리에서 저토록 위대한 분이 성장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저주 같겠지만 지금의 통영을 보면 다시는 저런 대단한 분이 통영에서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안타깝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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