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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35 - 쓰레기 이야기
   

먹고 입고 자는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생업에서도 우리 조상님들은 겸손함과 소박함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그러면 버릴 때는 어떠했나? 먹고 입고 쓰게 되면 반드시 버려지는 게 나오기 마련이다. 먹었으면 싸야 하고, 싸는 게 시원찮으면 명대로 살 수 없다. 그러니 잘 버리는 것은 잘 만들고 잘 쓰는 것만큼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 뜨거운 물을 버릴 땐 하수구에 그냥 버리지 않고, 꼭 찬물과 섞어서 버렸다. 하수구와 도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붙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일지라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내했다.

쌀뜨물을 그냥 버리면 물을 오염시키지만, 재활용하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국을 끓일 때 쓰거나, 구수한 숭늉으로 끓여서 후식으로 먹기도 하고, 기름기 많은 그릇을 씻을 때 세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 물은 다시 소와 돼지에게 여물로 주었다. 쓰임새가 있는데 함부로 버리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흐르는 시냇물에 함부로 소변보는 건 당연히 금기였다. 금기는 대개협박성 금언이 되어 철없는 이들의 행동을 제어했다. "시냇물에 오줌 누면 장가가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 바지춤을 내리다가도 이 말이 생각나면 얼른 풀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과 가축의 분뇨를 함부로 버리는 건 금기를 넘어 불법이었고, 법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쯧쯧, 저 귀한 걸 함부로 버리다니, 저러고서 어찌 밥 빌어먹고 살까"
농작물을 살찌우는 최고의 비료인 인분과 가축의 분뇨는 돈을 주고도 사 모을 유용한 자원이었다. 바깥에서 놀다가도 용변은 집에 가서 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게 똥이었다. 똥이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철없는 아이나 양반 아니면 입이 더러운 사람이었다.

물챙이는 물과 창(窓)이 합친 말로서, 싸리나무 줄기를 창살처럼 엮은 것이다. 개울에 가로질러 놓아 오물이 걸리도록 한 일종의 여과장치였다. 마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개울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오물을 걸러냄으로써 수질오염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물챙이에 걸린 나뭇가지나 쓰레기의 뒤처리 또한 매우 지혜로웠다. 수시로 건져 올려서 말린 다음 땔감으로 쓰고, 남은 재는 논밭에 뿌려서 거름으로 재활용하였다. 자연에 끼치는 피해는 가능한 줄이고, 반복해서 재활용함으로써 물질의 존재 가치를 최대한으로 살렸다.

아직도 물챙이 여울, 물챙이 다리 같은 지명에 물챙이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물을 아껴 쓰고 수질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을 타이르는 말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세숫물을 많이 쓰면 물에 빠져 죽는다" "세숫물을 많이 쓰면 저승가서 물을 구하지 못한다" "머리 감은 물로 발 씻으면 저승 가서 어머니를 뵙는다" "머리카락이 개천물에 떠내려가면 재수없다" "개울에서 손톱을 깎으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나타난다" 이 정도 협박이면 결코 물을 물쓰듯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동물의 배설물은 쓰레기가 아니다. 분해되어 자연 상태의 무기물질로 쉽사리 돌아간다. 식물들은 이 무기물질을 흡수해 영양분으로 이용하고, 그렇게 자라난 식물은 사람과 뭇 동물들을 살찌운다.

인간은 쓰레기를 너무 쉽게,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만들어낸다. 재활용되는 건 일부이고, 많은 쓰레기가 땅과 바다를 죽이고 있다. 쓰레기는 우리 삶을 관통하고 있다. 누구라도 그가 버린 쓰레기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간다운 사람인지,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을 하는 사람인지.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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