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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어머니 박경리와 고향 통영 ④박경리 창작의 활화산 원주한국 소설의 거목 박경리,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우뚝
   
 
   
 

'토지'…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 우리 정신의 GNP
토지문화관과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 생명사상 근원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나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삶의 불행하고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나는 글을 썼던 것입니다"

일반인에게 불행은 기껏 삶에 치욕만을 안기는 족쇄지만, 예술가에게 그것은 순도 높은 창조의 질료가 됐다. 토지는 25년간 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고독과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거둔 전리품이었다.

인천에서 꾸린 짧은 신접살림, 전쟁과 남편의 죽음, 용공 혐의, 아들의 돌발적 죽음, 사위 김지하의 출현, 유신과 폭력, 그리고 새롭게 다가온 생명에 대한 연민….

하지만 박경리의 삶은 생명을 향해 열려 있었던 세월이었다. 처절한 고독 속에서 한의 근원을 캐어 생명 사상을 잉태하는 크고 넓은 모성이 된다. '토지' 탄생의 전경(前景)이 여기서 펼쳐진다.

작가는 원주집 텃밭에서 한 세대에 가까운 세월을 절대고독이라는 천명으로 견디며, 암과 피나는 사투를 벌이며 포대기에 손자를 업은 채 "글 기둥 하나 잡고 눈먼 말처럼 연자매 돌리며" '토지'를 썼다.

3만 1천200장 원고, 5부 20권, 700명이 넘는 등장인물.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긴 호흡을 자랑하는 본격 대하장편 소설이다.

동학운동에서 광복까지의 파란 많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한반도 남단의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 진주-통영-경성과 만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삼아 펼쳐진 작가의 상상력은 소설을 넘어 한민족의 방대한 역사 기록으로 남는다.

언어가 창조할 수 있는 삶의 실제 세계를 파노라마처럼 전시함으로써 소설의 거대성을 담보해 내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 조세희는 "토지가 올려준 것은 우리 정신의 GNP"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박경리는 인기를 혐오했고 명예를 사절했다. 오히려 1999년 토지문화관을 만들고 재단을 구성, 문학의 어머니로써 배추 심고 상추 심어 따뜻한 밥과 함께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의 산실을 마련해 주었다. 자연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모든 생명을 보듬어 안았다. 무엇보다 인간적 품위를 우선적 가치로 삼았다.

1980년 서울을 떠나 토지 4부와 5부를 완성한 원주의 옛집과 뜰, 집필실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든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은 1년 열 두 달 박경리를 주제로 한 활동이 끊이지 않는다. 박경리문학상을 비롯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 박경리 문학 세계화의 거점이기도 하다. 아주 부러운 대목이다.

한 해 10만 명이 다녀가는 그 창작의 활화산은 2019년 11월 원주를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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