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열광에 빠진 일본 쿠온 출판사 7년 프로젝트 대장정

 

한국인도 읽기 힘든 박경리의 20권짜리 대하소설 토지가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마로니에북스판 토지 완역 7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일본의 쿠온(CUON) 출판사 프로젝트팀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反日 딱지가 붙은 토지 번역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 받고 있다.

지난해 8권이 출간됐고, 2019년 올해 11권까지 완역 계획 등으로 한국문학의 존재를 일본에 알리는 쿠온 출판사의 김승복 대표. 토지 지옥에 빠졌다며 함께 즐거워하는 일본 번역가인 시미즈 치사코, 요시카 나기, 요시하라 이쿠코, 그리고 편집자 후지이 히사코씨. 여기에 교정·교열의 재일교포 4세 박나리씨가 합세했다.

일본 도쿄 100년 넘은 유명한 '책 거리' 그곳에는 고서점, 출판사, 북카페 등 책과 관련된 점포가 200여 개 밀집돼 있는 명소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8월, 출판사 겸 북 카페를 운영하며 한국문학을 일본에 알리고 있는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와 토지 지옥이라는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는 번역가들을 일본 심장부에서 만났다.

김승복 대표, 박경리!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토지 20권 완성되는 그날까지 최선 다하겠습니다


"2016년 11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일본어판 1권과 2권을 통영 묘소에서 헌정할 때 가슴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권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경리 토지 20권 완전 번역 출판에 도전 중인 열정의 김승복 대표.

쿠온은 일본어로 '(세상의) 좋은 것은 오래간다'라는 뜻이다. 김승복 대표는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쿠온을 12년째 운영하며 우수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 출판, 일본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문학을 알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사랑방이라 불리는 쿠온의 주인장 김승복 대표는 한국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하고 주로 시를 공부했다. 졸업 후 199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니혼대 예술학부에서 평론을 공부하고 인터넷 광고 제작 회사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우수한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판매가 잘 안될 것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다.

결국 자신이 직접 3년간의 준비 끝에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쿠온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일본어로 번역 출간할 한국 작품 선정의 기준은 우선 2000년 이후에 한국에서 출판된 작품을 위주로 했다. 김연수, 은희경, 신경림 작가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2016년 맨부커 상으로 화제를 일으킨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김 대표가 이미 2012년 일본어판으로 출간했다. 산케이신문, 요미우리, 아사히 등 일본 유명 매체에서 찬사가 이어졌고 독자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그동안은 2000년대 이후에 발표돼 일본어권 독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 위주로 한국 문학을 소개해 왔다. 좀 더 한국 냄새가 물씬 나고, 한국이 근대로 오는 과정이 그대로 보이는 한국 문학, 양으로도 압도적인 한국 문학을 소개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25년에 걸쳐 완성된 20권의 대하소설 토지"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엄두도 내기 힘든 20권의 토지 완역 출판을 결심한 데는 일본에서 교육사업을 하는 김정출 청구학원 이사장의 도움이 컸다.

토지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을 놓고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김 이사장이 토지를 극찬하면서 제작비의 절반인 5억 지원까지 약속하면서 격려해 줬던 것이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3년이었다. 이후 김 대표의 토지 출간 계획은 속도가 붙었다. 선생의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을 만나러 원주는 물론 토지를 출간한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도 만났다. 통영과 원주, 하동, 서울을 오가는 답사와 편집회의, 홍보전략으로 정신없이 3년을 보낸 가운데 2016년 토지 1권과 2권을 동시 출간했다. 그리고 통영 박경리 묘소에 절을 하고 책을 헌정했다.

김 대표는 "토지는 장장한 스케일은 물론 사상, 역사, 문화를 총체적으로 어우르는 압도적인 작품으로, 세계 어느 나라 문학작품과 견줘도 당당한, 우리가 자랑할 한국 문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토지가 반일 소설이어서 일본 독자들에게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지적에는 "토지는 나라며 민족을 떠나 모든 것, 인간만이 아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생명 존중이 작품에 속속들이 들어가 있다. 시대적 상황에 녹아든 작중 인물들의 캐릭터가 때로는 반일로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어 "눈이 밝은 일본어권 독자들은 물론 이 부분을 잘 읽어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독자들도 수준 높은 한국문학을 읽을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미 일본이 인정한 문학평론가 가와무리 미나토, 와세다 대학 문학부 교수이자 번역가인 마쓰나가 미호, 문학평론가이자 철학가인 가라타니 고진,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등 적극적인 응원팀도 생겼고, 일본 독자들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 일본어판은 2017년 3·4·5권, 2018년 6·7·8권이 출간됐다. 여기까지가 5부 20권 중 이제 2부까지 끝난 셈이다.

올해 목표는 9·10·11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9권부터는 2인 체제에서 3인 번역체제로 들어갔다.

김 대표는 7년이나 걸리는 일을 완주할 때까지 체력이 따라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에 대비, 편집자 후지이 히사코(藤井久子)씨를 중심으로 '편집 방침 노트'를 만들어 번역자 및 관계자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자들이 직접 출판사를 방문, 다음 책이 언제 나오냐고 기대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박경리 선생님으로 인한 인연이 한일 문화 교류의 한 밑거름이 되길 기원한다. 한국의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힘을 내어 끝까지 완성해 내겠다"고 말했다.<끝>


 

쿠온 출판사 김승복 대표와 번역자 요시카와 나기, 시미즈 치사코, 교열 박나리씨(오른쪽 부터).

박경리의 토지 번역, 우리는 행운아
글 속 생명력에 용기…꼭 해낼 것


토지 일어 번역자 요시카와 나기·시미즈 치사코

"사투리가 가장 어려워요. 각 지방의 사투리가 많이 섞여 있고, 읽는 것도 힘들지만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은 토지 지옥에 빠져 있습니다"

8권까지 번역을 이어온 요시카와 나기·시미즈 치사코씨. 시간 단축을 위해 9권부터 참가하는 요시하라 이쿠코(吉原育子)씨. 3명 모두가 토지 지옥에 빠져 있다고 한다.

지난 2016년 박경리 선생의 묘소에서 일본어판 토지 서문을 낭독한 번역자 시미즈 치사코(淸水知佐子)씨.

일본 와카야마현 오사카 출생인 그녀는 오사카외국어대학(현 오사카대학) 조선어학과를 졸업하고 요미우리신문에서 18년간 기자로 근무한 후 프리 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 번역서로 '조선의 여성(1392-1945)-신체, 언어, 심성' 등이 있다. 일본어판 토지 2권 번역자이다.

그는 박경리 선생과의 첫 인연을 "2014년 10월 파주출판단지 팸투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지향 호텔에서 묵었는데, 객실이 모두 작가의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바로 자신이 숙박한 방이 박경리의 방이었고, 일행들이 무척 부러워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박경리와 토지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됐고, 2015년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의 번역 제안을 받았다. 혐한 무드 속에서 이 책을 출판하면 과연 누가 읽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작품의 평가가 너무 좋아 "해보자"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하늘과 인간을 존중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선생의 토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김영주 이사장님과의 만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하동 들판은 소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대 선배 요시카와 나기씨는 1권을 번역한 주인공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번역, 2018년 번역대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토지 문체의 통일과 책의 일관성을 위해 사람이름과 지명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사전을 바탕으로 통일시켰고, 박경리 선생이 직접 쓴 통영소장 일본어판 토지 원고도 참조했다.

편집장과 번역자들이 매일 매일 회의를 했고, 메일로 시도때도 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번역에 매달렸다고 한다.

요시카와 나기씨는 "토지의 사상이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사상,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중심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 글 속 생명력에 용기를 얻어 꼭 해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번역을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토지 속 배경이 된 곳곳을 답사하는 계획도 세웠다.

또 "번역을 해가면서 더욱 토지에 대한 매력을 느낀다. 20권까지 번역을 완성하고 그 책을 독자들이 함께 읽어주면 기쁠 것 같다. 많은 응원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하소설 토지 번역 7개년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2022년이 더 빨리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대한 유산의 박경리, 통영은 과연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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