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모 방송에 원문고개 어느 가정집에 매일 같이 날아와 쉴새 없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새의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황룡사 벽에 그린 솔거의 <노송도> 이야기가 떠올랐다. 진짜 소나무인 줄 착각해 새가 날아들다 미끄러졌다는데, 원문고개의 새는 무얼 보고 달려드는지 다들 신기해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유리창에 비친 북신만 바다로 가고 싶어 달려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두 발과 부리로 부딪혀 머리를 다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웃음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내었던 그 새는 노랑할미새였다.

할미새는 59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할미새, 검은등할미새, 긴발톱할미새,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시베리아할미새 등이 있다. 이 중에는 여름새도 있고 겨울새도 있다.

눈 옆의 검은 선이 인상적인 백할미새는 강이나 저수지, 논 습지, 해변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겨울 철새이다. 통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몸길이가 21㎝가량으로 작은 데다, 사람을 피해 빠르게 날아다니니 유심히 보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

왜 할미새라 불리는지 사연은 분명치 않다. 뒷머리와 등 색깔이 회색빛이라 할미새가 되었으리라는 추측 정도. 땅에서는 잘 뛰지 않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도 이름 짓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뒷짐 지고 걷는 회색 머리 할머니. 할미새는 영어로 wagtail이라 부르는데, 걸을 때마다 꽁지를 위아래로 흔들어 댄다(wag).

암수가 짝을 지어 생활하고, 바닷가나 바위틈에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날아갈 때 날개를 몸에 붙이고 물결치듯 날아가는 모양에서 쉽게 구별된다. 먹이로는 주로 곤충을 먹는데, 벌, 나비, 잠자리, 메뚜기, 거미 등을 좋아한다.

새들에게 유리는 위험한 물건이다. 도로의 소음을 차단하고 시선의 자유를 위해 만드는 유리 시설물로 인해 애꿎은 새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매일 2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비행을 위해 새들의 뼈는 얇고 속이 비어 있어 충격에 약할 수밖에 없다.

한때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서 새들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널리 쓰였다. 원문고개가 나왔던 방송에서도 같은 시도를 하였고, 효과를 보이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새들이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천적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대신 5×10 규칙이 있다. 높이 5cm, 폭 10cm보다 작은 틈으로는 새들이 지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장애물을 피한다. 이 간격으로 유리창과 유리 방음벽에 점을 찍거나 선을 그으면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문명 선진국은 1인당 GDP가 아니라, 애꿎은 생명의 희생 여부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배곯는 고통을 산업화로 극복했듯, 독재정권에 의한 인권유린을 민주화로 극복했듯, 우리의 무관심과 편리 추구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국가와 지역 선진화의 과제가 아닐까.

통영 사람은 바닷새와 더불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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