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발간
1956-1961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이자 고백서

우리의 아름다웠던 봄풀이 싹틀 때 시냇가에서 우리 식구들의 소요(逍遙)가 생각나는구려. 이런 즐거운 생활은 내가 작품을 써서 유명하게 되는 것에 지지 않을 만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
나의 마누라, 내가 당신을 알뜰히 생각하는 동안 나의 마음은 당신과 같이 고국의 산천을 헤매고 있소. 우리의 아름다운 동산이 나를 기다리는 고국으로 얼른 돌아가리라.

<1958년 1월 17일. 윤이상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세계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손꼽히는 현대음악가 윤이상(1917-1995). 그 찬란한 명성이 있기까지, 가난하고 외로웠던 유학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 덕이었다. 

1956년 마흔의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떠난 유학길, 5년간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수백 통의 절절한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 유학생활의 외로움과 생활고의 어려움 속에서도 빛나는 음악에 대한 깊은 열망,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편지들은 그 자체로 작곡가 윤이상의 유품이자 인생의 기록이며, 인간 윤이상이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고백이자, 음악에 바친 삶에 대한 가장 진솔한 자기 고백이다.
프랑스, 독일 유학시절 윤이상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60여년 만에 책으로 출간됐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남해의봄날)이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나는 사랑의 정의를 바꿨을지도 몰라"

윤이상에게 아내는 생활만이 아니라 일과 예술, 철학 전반을 공유하고 상의하는 지적 동반자였다.

그러하기에 아내를 향한 편지는 사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예술가 윤이상의 생각, 철학, 감수성, 음악가로서의 도전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

꼼꼼하기로 유명했던 윤이상은 매주 꼬박꼬박 편지에 자신의 건강부터 일상, 작곡 중인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당부,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고국에 대한 걱정까지 세세하게 적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보낸 솔직한 편지들을 통해 인간 윤이상의 성격은 물론 그의 음악작품에 드러나는 세계관까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제자들에게도 엄하기로 유명했던 윤이상이 아내에게 보여준 깊은 사랑과 존중, 신뢰는 이 책의 백미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거장의 섬세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선생의 딸 윤정씨는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잊혀진 이름, 윤이상. 이 책은 이념과 정치를 떠나 아버지 윤이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엇보다 윤이상이 직접 쓴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고 말한다.

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유학생활 중에 얇고 작은 항공우편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 넣은 글에는 지금껏 역사의 그늘에 가려 있던 아버지 윤이상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진솔한 고백을 읽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인간 윤이상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에겐 다정한 남편이자 우리에게 다정한 아빠였고, 통영과 대한민국을 사랑한 고뇌하는 음악가 윤이상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발간 동기를 밝혔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