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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41 - 오늘의 이순신 6, 기록하다
   

이순신은 기록의 달인이었다. 전장의 하루를 누비며, 하늘과 바다의 일기부터 병사와 백성들의 고통, 각종 군사 관련 기록을 꼼꼼히 남겼다. 덕분에 우리는 일기를 통해 실재하는 이순신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400여 년 전 동아시아의 역사를 뒤바꾼 해전사를 드론으로 내려다보듯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크나큰 복이다.

2013년 6월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훈민정음 이후 열 번째였다. <난중일기>는 특이한 기록이다. 개인의 일기가 인류의 역사에 길이 빛나는 경우는 여럿 있지만, 전장을 누비는 해군 최고 사령관의 일기는 드물다.

기록은 쓴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함경도 군관 시절, 여진족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죄로 처형될 위기에 처한 젊은 이순신을 구한 것은, 자신이 썼던 보고서였다. 적의 내습에 대비해 병력을 증원하고, 군비를 강화할 것을 여러 차례 상관에게 요청하였던 보고서 덕에 목숨 대신 관직을 내어놓고 백의종군할 수 있었다.

<난중일기>는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일기이다. 날수로는 총 2,539일, 약 7년에 걸쳐 쓴 것으로, 실제 일기를 쓴 날짜는 1,614일이다. 이 중에서 약 30일을 제외하면 날씨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바다에서의 전투는 기상 파악이 필수였다.

그의 날씨는 과학자들보다 세밀했다. 안개비(煉雨), 가랑비(細雨), 조금 오는 비(作雨), 적당한 비(雨), 다소 많은 비(雨雨), 소나기(驟雨), 큰비(大雨), 장맛비(霖雨), 크게 쏟아지는 비(雨勢大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雨雨如注) 등 10여 가지로 나누어 상세히 기록했다. '궂은비가 오더니 늦게 갰다(陰雨晩晴)', '비가 퍼붓더니 술시에 갰다(雨雨如注戌時雨止)'처럼 시간대까지 꼼꼼히 남겼다.

<난중일기>는 회계장부처럼 치밀하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 한양으로 압송되기 전 신속하게 진중의 물품을 정리하고 인계서류를 작성했다. "진영 내 군량미는 9,914석, 화약은 4,000근, 총통은 각 전선에 실어 놓은 것 외에 300자루." 군량과 화약, 총통은 진중에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여, 인계받은 사람이 혼동치 않고, 관리자들이 속이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곡식은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 '되'까지 기록했다.

장수와 병사들을 위한 회식과 사역에 투입된 인원도 고스란히 일기에 남겼다. "삼 도의 군사들에게 술 1,080동이를 먹였다(1594년 4월 3일)." "재목을 끌어 내릴 군사 1,283명에게 밥을 먹였다(1595년 9월 2일)." 백성들이 군사들을 먹일 식량을 가져다준 고마움도 꼭 일기에 남겼다. "진무성이 청어 4,300두름을 싣고 왔다(1596년 10월 11일)."

특히 이순신은 사람 이름을 매우 꼼꼼하게 기록하고 챙겼다. 공무로 수영을 드나드는 장수와 군졸들, 정보를 제공하거나 군량미를 가져오는 백성들, 영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일에 관련된 사람들, 심지어 수영을 드나드는 종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여종 덕금, 한대, 효대 그리고 은진에 있는 계집종도 왔다(1596년 3월 5일)"

이순신은 기록 속에서 살았고, 그의 기록은 지금도 살아 있다.

저자 주. 사진은 정조의 사제문(賜祭文)이다. 1795년(정조 19년) <충무공전서>를 펴내어 충렬사에 한 질 봉안하도록 하고, 통제사에게 명하여 제사하도록 하였다. <난중일기>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졌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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