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미륵산은 벌써 야생화 향연이 시작되었다. 변산바람꽃, 노루귀, 얼레지가 앞다투어 봄소식을 전한다. 이 중에 변산바람꽃이 제일 먼저 꽃망울을 틔운다. 사실 '제일 먼저 핀다'는 얘기는 조금 인위적이다. 봄꽃 향연이 시작되는 이즈음, 온 산천을 동시에 전수조사하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야생화를 찾아 남녘 땅을 두루 섭렵하며 발품을 팔아온 이들 덕분에 어슷비슷하게라도 꽃피는 순서를 알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미륵산에서 제일 먼저 봄을 전한다는 변산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너도바람꽃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꽃이다. 비슷한 이름의 바람꽃은 속명(屬名)이 아네모네(Anemone)로,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다. 하지만 변산바람꽃은 아네모네속이 아니라 에란디스(Eranthis)속이다. 그리스어 er(봄)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봄철에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학명은 Eranthis byunsanensis B.Y.Sun. 이름을 잘 살펴보면 '변산'이라는 지명과 한국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그렇다. 변산바람꽃은 순수 토종이다.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B.Y.Sun)가 1993년 변산반도 내변산에서 처음 발견하여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면서 학계에 보고되었다.

그런데 최초 발견지가 변산일 뿐, 제주는 물론 통영과 여수, 고흥, 울산에서부터 강원 설악산까지 자생지가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초기의 발표와 달리 일본에도 같은 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꽃말은 기다림과 덧없는 사랑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 있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월부터 늦게는 4월까지 북풍한설이 주춤하는 사이 잠깐 피었다가 이름대로 바람처럼 사라지니 '덧없다'.

변산바람꽃은 워낙 작아서 앞만 보며 걸어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꽃대가 높이 10cm가량으로 손가락 하나 길이 밖에 되지 않는 데다, 굵기는 콩나물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눈여겨보아야 만난다. 양지바른 습한 곳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데, 꽃대마다 희고 둥근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봄의 전령사들을 만날까 싶어 미륵산에 들었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녀석들을 만났다. 바위틈 맨땅 위로 솟은 앙증맞은 녀석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느다란 탄식 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잠시 뒤 작지만 당당한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아예 배를 깔고 엎드렸다.

하얀색 꽃잎이 5장인데, 사실 꽃잎처럼 생긴 이 부분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잎이다. 이 포엽이 떠받치고 있는 작디작은 꽃은 깔때기 모양의 녹황색 꽃잎과 반짝이는 청보라색 수술, 연두색 암술로 이루어졌다. 수국(水菊)도 이와 비슷한데, 넓은 꽃받침이작은 꽃을 대신해 수분을 도와줄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바람꽃에는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 모두 18종이라 하지만, 미륵산에서는 변산바람꽃과 꿩의바람꽃만 알려져 있다. 꿩의바람꽃은 땅속에서 나올 때 돌돌 말린 잎이 꿩의 발 모양을 닮았다고도 하고, 꿩의 목에 있는 깃털과 닮았다고 하고, 이름의 유래는 의견이 분분하다. 봄바람이 부는 4월에 피며, 하얀색 꽃받침이 10장 이상이라 변산바람꽃과는 쉽게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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