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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51 - 미륵산의 봄꽃 향연 2 노루귀와 얼레지

1950년 미륵산 정상에 섰던 시인 정지용은 통영기행문에서 이렇게 썼다. "금수강산 중에도 모란꽃 한 송이인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시인이 섰던 미륵산과 미륵도는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놀라운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다. 봄소식이 몰려올 즈음, 미륵산에 올라 먼바다 굽어보면 그렇게 탄성을 지르고, 허리 숙여 발밑을 더듬으면 올망졸망 야생화에 또다시 탄성을 지르게 된다.

바다에서 봄기운이 올라오니 온 산이 가려움증을 앓는 듯하다. 곳곳에서 꽃몽오리들이 땅을 박차고 나와 시선을 어지럽힌다. 변산바람꽃과 함께 미륵산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노루귀꽃이 하늘거린다. 나무 중에서는 생강나무 노란 꽃의 걸음이 제일 빠르다.

노루귀는 돋아나는 새잎과 꽃받침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꽃대와 꽃받침 뒷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우리나라 전국 산지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비옥한 토양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양지식물이다.

콧바람에도 날아갈 듯 작고 가녀리지만, 눈을 뚫고 나온다는 뜻의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란 이름을 가질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인내'라는 꽃말을 입속으로 되뇌어 보면 애잔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노루귀는 3종류로 노루귀, 새끼노루귀, 섬노루귀가 있다. 새끼노루귀는 제주도와 서남해안 일부 지역 척박한 곳에 서식하며,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섬노루귀는 우리나라 고유식물로 꽃이 제일 크다. 흰색, 분홍색, 청색의 세 가지 색깔이 있는데, 미륵산에는 흰색과 분홍색 노루귀만 관찰된다.

노루귀가 3월 바람에 흔들릴 때 파릇한 새잎을 피우고 꽃대를 밀어 올리는 다음 주자가 얼레지다. 현금산 자락에서 작은망, 큰망으로 이어지는 길은 얼레지의 천국이다. 얼레지는 앞서 봄을 불러오는 변산바람꽃이나 노루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꽃말부터 남다르다. '바람난 여인'. 꽃잎이 뒤로 젖혀진 모습이 개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여 '개의 이빨'이라는 서양식 이름도 갖고 있다. 초록색 잎사귀에 얼룩덜룩 자줏빛 무늬가 있어 얼레지라 불리는데, 활짝 핀 꽃잎이 가재의 집게를 닮았다 하여 가재무릇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얼레지는 낯선 모습이다. 여섯 꽃잎이 뒤로 젖힌 모습은 발레리나가 점프해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키도 30cm가량으로 훤칠하여 변산바람꽃이나 노루귀를 앉은뱅이 꽃으로 만들어버린다.

얼레지는 한반도에 어울리는 봄꽃이 아닌 듯 하다. 민초들이 지키고 일구어 온 척박한 땅에 이토록 날렵하고 귀티 나게 아름다운 보랏빛 봄꽃이라니.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전설 같은 해동성국 발해나 통일신라였다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온 세계가 부러워 한, 백성이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나라. 여성이 자유롭고, 남녀가 평등했던 고려 때만 해도 자유분방한 얼레지는 이 땅에 어울리는 꽃이었겠지.

봄 햇살이 딱 좋은 날, 얼레지가 만개한 능선 길을 걸으며, 봄 노래 흥얼거리며, 햇살에 장단 맞춰 팔다리를 길게 뻗어 춤이라도 출 일이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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