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한풀 꺾이던 삼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평소에 남다른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오광대(五廣大) 회장을 맡고 있는 김홍종 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화식당 주인인 부영옥 으로부터 오찬 초청이 있으니 동행하자는 것이다.

개업하는 업소냐고 물었더니, 개업은 아니고 일 년에 하루만 특별하게 열리는 식당이라면서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 곳에는 일반손님은 없고, 초청하는 손님만 받는데, 메뉴도 주인 임의대로이며 그 대신 식대는 사양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실제 음식점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 요리 실력도 대단하다는 소개였다.

그런 식당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을 했더니, 매실농장 안에 있으니 가보면 안다는 것이다. 별스런 곳이라 생각하면서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따라나섰다.

초청받은 사람은 김 회장과 나, 그리고 시(市) 의회 의장을 맡아 남 달리 열정을 다했던 김광현 의장까지 모두 세 사람이 전부였다.

언덕아래 차를 세우고 가파른 골목길을 한참 올라갔더니 수백 평은 됨직한 매실농장이 나타났다. 신선한 암향(暗香)과 함께 천하의 봄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활짝 핀 매화가 짙은 흰색 솜구름처럼 내려 앉아 있었다.

엄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잎도 피기 전에 만발한 강인하고 성급한 꽃의 별천지였다. 누군가가 매화는 '아름다운 소녀'라고 했다지만, 정결하고 고상하기가 이를 데 없는 선녀들의 군무(群舞)가 하늘을 가득 메운 꿈결 같았다.

이 농장에서 가장 꽃이 많고 꽃그늘이 넓은 매화나무 밑에서 농장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일 년 중 가장 기쁜 날이 오늘이라는 인사와 함께 미리 준비된 임시 가설 식탁으로 안내받았다.

식탁의 메뉴가 예고도 없이 세 번씩이나 바뀌었다. 처음에는 장어구이가 등장했다. 잠시 후에는 뜻밖에 쇠고기 안심구이가 등장하고, 식사의 마무리는 도다리 쑥국까지 나왔다. 반주(飯酒)도 매실주를 비롯한 세 가지였으며, 식후에도 매실차를 비롯한 세 가지 차(茶)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화려한 꽃그늘에 앉아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한 식사를 해 보기는 출생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부럽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매실 찻잔을 드는데 매화꽃잎 하나가 나풀나풀 찻잔 안에 내려앉았다.

머리위로 매화 꽃무더기를 유심히 올려다보았더니 꿀벌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고 했다.

꿀벌이 다른 동물보다 인간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부지런한 본성 탓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자를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저 꿀벌역시 희생과 봉사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닌가.

이 농장 주인인 부영옥이 이처럼 정성을 다하여 베푸는 것도, 저 꿀벌에게서 배운 것으로 짐작되었다.

남을 위해 무조건 베푼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벅차도록 감동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농장 주인의 기준에 따르면, 지역사회에서 베풀고 사는 존경스런 사람들을 찾아 초청했다지만, 나만은 자격미달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베푸는 일에 인색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지나간 것을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늦었지만 아직 어둡지는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다부지게 시작해 볼 일이라고 결심했던 것이다.

찻잔에 내려앉던 그 꽃잎도 역시 베풀면서 아름답게 살라는 메시지였으니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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