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정기념사업회 주최, 재단법인 풍해문화재단, 한산신문사 후원

심/사/평

올해는 초정 김상옥 시인 탄생 100주년이다. 초정의 심미안과 시정신을 기려 제정한 '김상옥백자예술상'도 여러 해를 거듭하였다. 신인상에 22편, 본상에 11편의 시조집이 들어왔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고 대개 일정한 수준을 상회한 시편들이라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많았다.

초정은 시조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만큼 살아있는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든 시조든 시인의 삶과 개성이 생동하는 형태라는 시의식을 줄곧 견지했다. 늘 그렇듯이 수상작을 고르는 데 초정의 시정신은 하나의 준거로 작동했다. 이리하여 부문별로 각기 세 권의 시조집을 추렸고 이 가운데 한 권을 남긴 뒤에 한 편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본상에 이종문의 『그때 생각나서 웃네』, 신인상에 유순덕의 『새가 울 때』가 남았다.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종문의 시조는 일상성을 그에 어울리는 어조와 리듬, 시어와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지 시조의 율격을 해체하는 데 의도를 두지 않고 유연하게 시조의 형식을 변용하면서 삶의 양식을 그려낸다. 정한 틀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재한 행보는 정형의 외피가 구속으로 간섭하지 않는 정신을 반영한다. 시조와 더불어 삶과 세상을 즐겁게 관조하거나 풍자한다. 낙관과 웃음이 곳곳에 배어난다. 생활 세계 속으로 시조를 끌어온 그의 공로가 크다. 일상과 생활을 담아내는 데서 나아가 일상과 생활의 양식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유순덕의 시조는 의식의 지향에 어울리는 언어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시적 의장이 두드러진다. 적절한 행 갈이를 동반하여 생동하는 리듬을 형성하는 방법도 수준이 높다. 무엇보다 비유와 이미지의 곡절이 구체적인 실감을 유인하여 감동을 자아낸다. 삶의 지각하는 감각이나 태도가 진지하고 진실한 어조로 나타나고 있다. 마음의 율동을 형성하면서 열린 형식을 창조하였다.

본상과 신인상 수상자의 우수한 시편들 가운데 이종문의 「「나무 별이 참 많았다」 와 유순덕의 「새, 꽃등을 걸다」 를 본상과 신인상의 수상작으로 내민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예심(신인상 부문) : 김승봉(시조시인)
-본심 : 김보한(시인), 구모룡(글.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교수)

※ 본상 수상자는 한 곳과 1인의 추천, 신인상 수상자는 본인 응모과정을 통해 접수,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되었습니다.(초정기념사업회)

 

제7회 '김상옥백자예술상' 본상

본상 수상작

 나무 별이 참 많았다
                                              이 종 문

나무들을 안고 싶어 내 모교로 내달려 와
참 우람한 나무들의 한 복판에 누워 봤다
캄캄한 밤하늘 속에 별이 총총 참 많았다

그 순간 별똥별 하나 산 너머로 날아갔다
그 당장 두 손 모으고 나직하게 기도했다
내 모교 임고초등이 나무 같고 별과 같길

또 하나의 별똥별이 산 너머로 날아갈 때
다시 한 번 기도했다 까마득한 내 후배들
모두 다 별이 되라고 저 나무를 닮은 별이

나무께 안기고 싶어 내 모교로 내달려 와
참 우람한 나무들의 한 복판에 누워 봤다
캄캄한 밤하늘 속에 나무 별이 참 많았다

 

당선소감
김상옥백자예술상의 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참으로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이 상을 그냥 덥석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을 사나흘 동안이나 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뜻밖의 상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각별하게 사랑해 주셨던 초정 스승께서 주시는 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승께서 주시는 상을, 주신다고 덥석 받기에는 제가 제자로서 부끄러운 점이 너무 많거든요.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직접 목도한 스승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의 주요 신문에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과 어록을 소재로 한 공익 광고가 제법 오랫동안 대문짝 만하게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제가 이태원에 있었던 스승의 댁에 들렀더니, 신문에서 오린 백범선생의 사진 수십 장이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더군요. 이 수많은 사진들을 모두 다 어디에다 쓰시려고 이렇게 오려 두셨느냐고 별 생각 없이 여쭈어 보았더니, 스승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하시더군요.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무수한 위인들 가운데 이순신 장군과 백범 선생을 제일 존경합니다. 요즈음 신문에 날마다 백범 선생 사진이 크게 실려 나오는데, 거룩하신 선생의 사진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휴지통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정말 죄스럽고 민망한 일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한 뜨거운 감동이 그 무슨 해일처럼 밀려왔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요즘 세상에도 이토록 추상같이 살아가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놀랍게 느껴졌거든요. 멍한 충격 속에서 무심코 똑같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데, 넘기다 보니 백범 선생의 얼굴에 구두 발자국이 희미하게 찍힌 신문이 한 장 있었습니다. 그 연유를 여쭈어보았더니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어느 날 종로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느닷없는 돌개바람에 신문지 한 장이 내 앞에 툭, 떨어졌지요. 가던 걸음이라서 무심코 밟았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좀 이상하다 싶어 내려다보았더니, 내 구둣발이 백범선생의 안경 끼신 얼굴을 밟고 있지 않겠소.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토록 흠모하는 선생의 얼굴을 내 구둣발로 밟았다고 생각하니 죄송스럽기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신문을 주워 와서 흙을 샅샅이 다 털어내고 다리미로 이렇게 말끔하게 다려 놓은 것이야요"
 
그 순간 거대한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사제의 연을 맺은 이래, 줄잡아 오륙십 번을 찾아뵈었던 초정 스승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그러니 대충대충 인생을 살아온 제가 어떻게 이토록 고매한 스승의 이름으로 주는 상을 '얼씨구나' 하고 덥석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여 끝내 받지 않기도 어려워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상을 받으면서, 가을서리처럼 숙연하셨던 스승의 삶을 음미하는 한편 저의 삶과 문학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계기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상을 제정하고 운영해주신 초정기념사업회와 변변치도 못한 작품을 수상작의 반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초정선생 굽어보고 계실 저 높고 푸른 하늘을 오래 오래도록 쳐다봅니다.

약력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음. 1993년 초정선생이 심사하신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와 역류동인으로 활동하였음. {저녁밥 찾는 소리}, {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 {묵 값은 내가 낼게}, {아버지가 서 계시네}, {그때 생각나서 웃네} 등의 시집과 시선집 {웃지 말라니까 글쎄}, 산문집 {나무의 주인}을 간행하였고, {한문고전의 실증적 탐색} 등 다수의 한문학 관련 논저들을 집필하였음. 한국시조작품상, 유심작품상, 올해의 시조집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음. 현재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로 있음.  

제6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신인상 수상작

새, 꽃등을 달다

                                                유 순 덕

아득한 세상을 돌아 감나무에 날아든 새
문득 스친 눈빛에 안절부절 숨 고르다
상처 난 가지들마다 꽃등을 걸어 주고

비바람 뙤약볕에 떫은맛 삭힌 감들
서리꽃 진 이른 아침 두고 간 인연인 양
눈시울 붉어가면서 아픈 밤을 품어준다

내일은 괜찮을 거야, 아픈 나무 잠재우다
몸 살짝 돌려 앉아 두 발 가만 모으고
예리한 겨울바람 민낯 토닥이는 낮은 햇살

울 수도 없는 나무를 읽어 주던 새의 눈매
감빛 물든 간절한 맘 홍시 끝에 남겨 두고
푸드득, 깃털을 떨구고 간 하늘 한켠 따뜻하다


 

당선소감
"초정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통영, 그 아름다운 바다 쪽에서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몇 번인가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택배 시죠?"라고 묻는 제게 들려온 대답이었습니다. "참 연락이 어렵네요"라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저에게 수상 소식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이냐고 몇 번인가 물었던 것도 같고, 부족한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으며, 사나흘이 넘도록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응모한 시집에서 「새, 꽃등을 달다」가 선정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울 수도 없었던 시간에 대해 썼습니다. 이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저는 누군가에게 숨겨둔 마음을 들킨 것도 같았고, 언젠가 막막했던 저를 읽어 주던 새에 대한 기억이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유년의 옛집에는 제가 사랑하는 몇 백 년 된 늙은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뒤란을 가득 메웠던 감나무 때문에 저는 시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옛집의 그 감나무는 모든 말을 몸짓으로 보여줄 뿐 말이 없었습니다. 봄날 새가 날아오면 감꽃을 피워주는 것도, 여름 폭풍우에 가지들이 잘리면서도, 가을 풍성한 감들을 우리에게 내어주면서도, 하늘 끝 홍시들을 새들에게 내어주면서도, 말이 없는 몸짓으로 말을 건넬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밑동만 남은 그 감나무는 옛집을 지키며 홀로 시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초정 김상옥 선생님은 사람이 사는 곳에는 병이 있고 신음소리가 들리기 마련인데, 바로 그 괴로움을 아파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김상옥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도 저는 다음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고이 젖은 눈썹 불빛에 깜작이며/떨리는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짚으시고/고향에 늙은 어무니 뵙고 싶어하더이다//그밤에 맑은 혼은 고향으로 가셨든지/하그리 그린 이들 이름을 부르시고/입술만 달싹거리며 헛소리를 하더이다//마지막 지는 숨결 온갖 것을 갈랐건만/어린 것 품에 안고 젖꼭지 쥐여준 채/새도록 눈을 쓸어도 감지 않고 가더이다 (김상옥, -「누님의 죽음」 전문)

김상옥 선생님은 아픔이 그립고, 진실이 괴롭고, 또 시가 그리워 못 견딜 때는 국립박물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오롯이 담긴 백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고 합니다. 그런 선생님은 '아름다움은 곧 사랑이며, 美(미)가 지(知)보다 앞선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인이 무엇이며 보람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권력, 어떤 재화, 어떤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슬픈 종교의 삼위일체"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그 말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아픔과 괴로움, 아름다움의 슬픈 종교의 삼위일체를 깊이 새기며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 주신 김보한, 구모룡 심사위원님, 그리고 존경하는 초정기념사업회 관계자 선생님들과 100주년 기념행사 등을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통영문인협회 김승봉 회장님과 회원님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언젠가 잠시 날아왔던 새, 항상 용기와 배움을 주시는 경기대 이지엽, 윤금초 교수님 그리고 그 외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지만, 곧 좋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약력
1967년 전북 고창 출생/경기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졸업(문학박사, 현대문학, 시 전공). 단국대학교 박사 졸업(문예콘텐츠. 스토리텔링 전공)/명지대·단국대 대학원 졸업(석사, 문예창작 전공)/경기대학교 국문과. 방송대 불문학과·영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열린시학》등단. 《한국동시조》등단. 고산 신인상, 열린시학상. 2013~2015년 중앙시조백일장 장원(총3회), 2013년 전국가람시조백일장 장원(교육부장관상).
시조집 『구름 위의 구두』, 『흑고니가 물 등을 두드릴 때』, 『새가 울 때』. 연구서 『현대시조에 나타난 형식미학과 생명성 연구:이병기, 조운, 김제현, 조오현』, 석사논문「죽음의 형상화와 치유의 글쓰기」, 박사논문 「현대시의 고향의식 수용과 치유에 대한 연구: 정지용, 윤동주, 정완영의 작품을 중심으로」.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