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관객 없는 온라인 공연'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추세에 발맞추어 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온라인 공연 영상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공개했습니다. 공연이 영상에 담기던 그 순간에 저는 텅 빈 객석에서 '라이브' 연주를 감상하는 호사를 실로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상에 담긴 공연 실황을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저는 그것이 세계 주요 공연장의 온라인 공연과 견주어 적어도 음질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공연'은 결국 한계가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온라인 공연에서 말한 것처럼, 마이크를 거쳐서 전달되는 소리는 공연장 음향과는 성격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연주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또 소리 자체를 넘어서는 현장의 공기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른바 가상현실 기술 또한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원시적입니다. 그래서 넘쳐나는 온라인 공연으로도 '진짜 공연'에 대한 갈증이 줄어들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예술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보다, 그냥 영상예술이 그 자체로 오늘날 기술 수준에서 진정한 대안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영화관은 심각한 경영난을 맞고 있지만, 온라인 영화 스트리밍 시장을 이끄는 한 업체는 놀라운 영업 실적을 자랑하던데요. 그리고 저 같은 음악 애호가에게는 영화적 연출과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음악이 구성요소가 되는 '음악 영화'가 타협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음악 영화 여럿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작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최근 오페라 연출가로도 활약한 바 있는 우디 앨런 감독의 2013년 작품 '로마 위드 러브'(To Rome with Love)입니다. 영어 제목의 뜻은 '사랑하는 로마에게' 정도가 적당해 보이고, 또한 제임스 클라벨의 1959년 소설이자 1967년에 영화화되었으며, 그 타이틀곡으로도 유명한 'To Sir With Love'(우리말 제목: 언제나 마음은 태양)를 패러디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네 가지 에피소드로 되어 있는데, 네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에 음악이 있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 본인이 '제리'라는 은퇴한 오페라 연출가로 출연해 예비 사돈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예비 사돈인 '미켈란젤로'가 샤워를 하면서 흥얼거린 노래를 우연히 듣고 깜짝 놀란 제리는 미켈란젤로를 오페라 가수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미켈란젤로가 샤워할 때에만 제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제리는 기발한(?) 연출로 미켈란젤로를 끝내 무대에 올리고 말지요.

영화 속에서 레온카발로 오페라 '팔리아치'를 공연하는 장면은 이 에피소드의 절정으로, 영화 속에서 오페라를 공연하고, 오페라 속에서 유랑극단이 또 공연을 하는 다층적 액자 구조 속에서 치정 관계의 심각함과 공연의 긴박감을 '기발한' 오페라 연출이 압도해 버리고, 그 결과 관객을 정신없이 웃게 만듭니다. 어디가 웃기는지를 말해 버리면 이른바 '미리니름'(스포일러)이 되어 버리니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오페라 '팔리아치'를 모르시는 분은 간단한 이탈리아어 대사 몇 가지를 알고 영화를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켈란젤로가 분한 오페라 주인공 '카니오'가 바람난 부인에게 '그놈'이 누구냐고 다그치면서 하는 말, '일 노메! 일 노메!'(이름! 이름!)입니다. 두 번째는 공연 중 끔찍한 일을 저질러 버린 카니오가 관객을 향해서 하는 말, '라 코메디아 에 피니타!'(연극은 끝났소!)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 중 특히 유명한 마지막 대목의 노래 선율과 가사도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웃어라, 광대야, 사랑이 부서져도! (Ridi, Pagliaccio, sul tuo amore infranto!)

웃어라, 광대야, 고통으로 가슴이 썩어도! (Ridi del duol, che t'avvelena il 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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